4차 산업 시대 지식재산권(IP)은 중요한 산업이 되었으며, 새로운 지식재산권(IP)이 필요한 시대이다. 지식재산권을 갖추기 위해 가장 기본은 잘 만들어진 이야기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디즈니의 백설 공주나 마블 시리즈처럼 재미있는 이야기는 시간이 지나도 생명력을 가지고 계속 전해지고,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어 끊임없이 생산되고 소비된다.

또한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것이 스토리가 가지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잘 만들어진 IP는 다양한 콘텐츠로 활용되어, 제2의 창작, 제3의 창작으로 이어져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게 된다.

이재홍 교수님께서는 게임에 있어 스토리텔링이 가지는 힘이 무엇인지? 스토리텔링이 왜 중요한 것인지에 관해 설명해 주셨다.

GSOK: 게임 스토리텔링을 전공하셨는데, 게임 스토리텔링이 무엇인지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재홍 교수: 게임 스토리텔링은 플레이어에게 최고의 감동을 주기 위한 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서를 자극하는 장치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 게임의 캐릭터, 사건, 배경이 이야기의 3요소입니다. 게임 스토리텔링은 이야기의 3요소가 내재 되어 희로애락을 자극하고, 다양한 요소를 제공하여 플레이어에게 최고의 만족감 또는 희열을 주기도 하고, 극한 슬픔이나 분노를 느끼게 해주는 장치를 말합니다.

GSOK: ID 소프트웨어를 창업한 1세대 개발자 존 카멕은 게임은 스토리가 ‘있으면 좋겠지만 중요하진 않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즉 게임은 ‘게임 플레이’ 가 중요하므로, 스토리나 스토리텔링을 넣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취지인데요. 이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현대 게임에서 스토리나 스토리텔링이 왜 중요한지에 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재홍 교수: 존 카멕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게임 장르라고 할 수 있는 FPS(First Person Shooting)의 기초를 정립한 인물이며, 온라인 멀티플레이 시스템을 최초로 도입한 인물이기도 하죠. 존 카멕은 프로그래머 출신으로 알고 있는데, 닌텐도의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을 컴퓨터로 컨버전하는 데 성공하기도 하고, 현재 FPS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게임인 ‘둠’을 출시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초기 슈팅 게임들은 목표물을 향해 총을 발사하여 점수를 획득하면 되는 단순한 게임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스토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훗날 게임의 서사적 스케일과 규모를 감당하지 못하면서 더 이상의 게임을 내놓지 못하고 실패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게임을 보면 캐릭터가 있고, 대상물이 있고, 그 안에 있는 시공간적인 배경들이 있는데 스토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저로서는 이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본인들 스스로는 게임의 스토리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만들어 놓고 보면 결국 스토리가 어떻게든 들어가 있습니다.

저는 게임을 인문학·공학·예술이 융합되어 탄생하는 첨단 종합예술이라고 정의 내리고 있습니다. 아무리 단순한 슈팅 게임이라고 하더라도 게임 내부에는 거대한 서사가 마치 대동맥처럼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존 카멕은 놓치고 있었던 것이지요. 어떠한 게임이더라도 세계관, 캐릭터, 사건, 아이템, 퍼즐, 음악 등과 같은 매개체 요소가 필연적으로 얽혀서 구성된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스토리가 약한 게임은 게이머의 한순간 말초신경을 자극하여 반짝하고 주목을 받을 수 있겠지만, 그 자극이 오래 유지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완성도 높은 스토리와 함께 게이머의 정서를 자극하는 스토리텔링이 잘 된 게임은 게이머가 느끼는 감동이 깊어지게 되고, 게임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지요. 따라서 스토리텔링이 잘 된 게임은 일반적으로 생명력이 매우 길고 수익성 또한 보장됩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스토리텔링이나 스토리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부분입니다.

예컨대, 선데이토즈의 <애니팡>과 로비오 엔터테인먼트의 <앵그리버드> 두 게임의 차이는 사소한 스토리텔링인데, <애니팡>은 이용자들이 왜 3마리를 모아야 하는지 모르고 단지 점수를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지만, <앵그리버드>는 돼지들이 알을 훔쳐 가 응징해야 한다는 스토리가 담겨 있습니다. 아주 단순한 스토리에 따라서도 유저들의 정당한 게임 행위가 드러나는 것이죠. 이것이 단순 스토리와 스토리텔링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GSOK: 게임 스토리 개발이 새로운 지식재산권(IP)으로 이어져 부가적인 수입을 거두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일본이나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 이러한 IP가 활발하게 활용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를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이재홍 교수: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상상력이 풍요로워지는 메타버스시대에는 인터랙티브한 상상력과 콘텐츠의 상품성을 크게 좌우하고 있습니다. 스토리의 완성도가 높은 게임의 소재는 다른 장르로 변환시킬 수 있는 OSMU(One Soure Multi Use)의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콘텐츠 세계에서 성공한 OSMU를 이야기해보면, 한 편의 소설로 게임·영화·드라마·만화 등의 IP를 창출하여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는 <해리포터>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해리포터는 이 순간에도 원작 스토리를 활용하여 새로운 IP를 지속해서 창출하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게임·영화·드라마·만화 등의 IP를 생산해 내며 성공사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컴투스의 <서머너즈워>, 크래프톤의 <배틀그라운드> 같은 우리 국내 게임사들도 자사의 게임 IP를 활용하여 영화나 웹툰 그리고 애니메이션 등으로 제작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아무리 간단한 캐주얼 게임이라고 하더라도 게임으로 만들어지는 이상 스토리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제대로 완성도 있는 스토리를 탑재하여 게임을 제작한다면, OSMU를 통해 제2의 창작, 제3의 창작으로 이어져 새로운 IP가 탄생 되고 부가가치를 구가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게임사들이 인식하면 좋겠습니다.

GSOK: 교수님께서는 블리자드의 <World of Warcraft (이하 ‘WOW’)>를 통해 게임 스토리텔링에 대해 여러 각도에서 분석하셔서 많은 논문을 쓰셨습니다. <WOW> 는 게임 스토리텔링 관점에서 밸런스가 잘 맞는 게임이라고 분석하셨는데, 그 이유를 간단히 설명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또한, 우리나라 게임사가 벤치마킹할 만한 점이 있을까요?

이재홍 교수: <WOW> 는 2004년에 출시되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저는 다양한 게임을 해왔는데 우리나라 게임도 아닌 <WOW> 를 열심히 했던 이유가 스토리의 완성도가 높은 게임이라고 생각해서입니다.

제가 그동안 게임 관련 논문을 50편 정도 썼는데, 그중 25편이 <WOW> 와 관련된 논문이었습니다.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인 <WOW>는 2004년에 출시되어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는 게임으로, 1200만 명 게이머들이 정액요금을 매달 지출하면서 즐기는 게임입니다. <WOW>는 1만 년에 걸친 방대한 연대기를 지닌 아제로스 세계를 역사적 배경으로 취하고 있습니다.

아제로스 세계를 바탕으로 영웅들의 판타지가 방대한 스토리로 구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메인 서사와 서브 서사로 이원화되어 있지만, 강력한 인과성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완벽한 서사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게임에 내재된 퀘스트 시스템과 사냥 시스템은 캐릭터의 성장과 스토리의 통일성을 활성화하기 위한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게이머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정서 유발 요소들이 인물, 배경, 사건에 매우 섬세하게 스토리텔링 되어있습니다.

또한, <WOW> 는 폭력성과 비폭력성의 밸런싱이 매우 잘 되어있습니다. <WOW>의 다섯 번째 확장팩인 ‘드레노어의 전쟁 군주’퀘스트를 보면, 총 퀘스트 1,025개 중 폭력적 퀘스트 510개, 비폭력적 퀘스트가 515개로 비폭력적 퀘스트가 폭력적 퀘스트보다 5개가 많습니다. 우리나라 MMORPG 게임을 보면, 몬스터를 사냥해서 아이템을 획득하기 바빠서 비폭력적인 요소들을 신경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폭력적인 행위로 임무를 완수하는 퀘스트와 비폭력적인 행위로 임무를 완수하는 퀘스트를 통해 게임의 역기능성을 축소하고 순기능성을 확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GSOK: 국내 게임 중 스토리텔링이 잘 되어있는 게임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또한,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는 무엇인지 더불어 말씀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이재홍 교수: 제가 게임을 공부하면서 스토리텔링이 잘된 작품이라고 생각한 게임들은 대부분 오래전 출시한 게임들이었습니다.

게임에 대한 데이터를 찾기 위해 학문적으로 정신없이 몰입해서 게임을 하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 접하게 된 게임이 손노리가 개발한 <화이트데이> PC 패키지 게임이었습니다. <화이트데이>는 스토리텔링이 잘 된 국내 게임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폭력성이 낮으면서도 공포의 본질을 잘 살린 것이 특징인 게임입니다. 흉측한 몬스터들과 음산한 분위기의 스테이지를 디자인하고 있는 잔혹한 호러가 아니라, 음산한 배경음악과 귀신 소리를 효과음으로 나타내는 청각적인 공포를 활용하여 한국적인 공포를 디자인해내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나 발매 첫날 게임을 구입한 유저가 공유 사이트에 게임 파일을 업로드 하면서 수많은 게임 유저들의 불법 다운로드로 인해 금전적으로 엄청난 손실을 맞이하게 되었고, 판매량 부족 등으로 인해 회사 경영난에 문제가 생길 정도로, 손노리사는 불법 복제의 최대 희생양이 된 게임이기도 하였었지요.

호러게임의 생명력은 플레이어가 접하는 공포요소를 어떻게 재미 요소로 바꾸어 나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특히, <화이트데이>는 고딕적인 공포 분위기가 강하게 표출되는 인포그램즈의 <어둠 속에 나 홀로>, 캡콤의 <바이오 하자드>, 코나미의 <사일런트 힐> 등과 같은 공포물보다 잔인성을 찾아볼 수는 없지만, 은근한 공포 분위기가 강하게 연출되는 호러게임입니다.

<화이트데이>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기괴한 사건들이 벌어지는 것을 배경으로 다양한 캐릭터들이 어우러져 매우 탄탄한 시나리오를 형성하고 있고, 캐릭터의 친밀도에 따라서 이야기가 분기되는 분산형 다변수 서사의 전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모든 설계구조와 스토리텔링 구조는 서구형 호러게임이 지닌 스플레터적인 호러를 모방하지 않고, 순기능적인 요소를 강화시키는 테러고딕적인 호러게임 시스템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화이트데이>는 이 시대에 가장 필요성을 느끼는 순기능적인 게임의 대표적인 사례이며 국내 게임 중 스토리텔링이 가장 잘 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GSOK: 최근 전 세계 게임 업계에 <로블록스(ROBLOX)> 등 ‘메타버스’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메타버스는 새로운 차원에서 기존에 게임사가 제공하던 스토리텔링에서 벗어나 이용자가 스스로 스토리를 만들어나가고 심지어 이를 통해 수익을 얻을 수도 있는 새로운 구조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메타버스가 향후 게임 스토리텔링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하시는지요?

이재홍 교수: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하여 재택근무나 재택수업이 늘어나면서 MZ세대는 자연스럽게 가상 디지털세계에서 놀 수밖에 없는 상황에 봉착하게 되었죠. 시기적절하게 로블록스의 <로블록스>나 네이버제트의 <제페토(ZEPETO)>와 같은 메타버스 플랫폼들이 놀이의 장을 열어주었고, 자연스럽게 게임과 연계되는 현상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아주 고약스러운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데, 게임사들이 블록체인의 ‘대체 불가능한 토큰(Non-Fungible Token (이하 ‘NFT’)’ 및 메타버스 사업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블록체인 NFT기술을 활용한 P2E(Play to Earn)게임을 출시, 이용자 간에 NFT를 거래할 수 있는 NFT마켓을 만들어나가겠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존 P2W(Pay to Win) 모델에 한계를 느끼던 게임사들 역시 P2E(Play to Earn) 모델에서 새로운 수익모델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P2E와 NFT에서 성장동력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다이야기 사태’ 이후 사행성 규제가 엄격해진 우리나라에서는 게임 아이템의 현금화는 불법이기 때문에 해외에서나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이지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메타버스와 블록체인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기 위한 게임사들의 도전은 당분간 지속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가상경제에 대한 정부의 뚜렷한 정책적 대안이 마련되어야 할 시점이지요.

GSOK: 그동안 교수님께서 게임 강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IP(지식재산권) 창출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셔 왔습니다. 최근 게임, 드라마, 웹툰을 하나의 세계관으로 묶는 ‘슈퍼 IP’를 한국에서도 시도하지만, 미국의 마블과 같은 효과를 아직은 내고 있지 못한데, 발전하는 한국 IP 시장을 위해 조언해 주실 것이 있으신지요?

이재홍 교수: 코로나19 펜데믹 시대로 접어들면서 MZ세대들의 게임생태계 패러다임은 급변하고 있습니다. 펄어비스가 새롭게 제시한 신작 액션 어드벤처 수집 게임 <도깨비>가 전체 맵의 10%도 보여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외에서 큰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더불어 블리자드의 <디아블로2 레저렉션>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현상을 보면서 MZ세대들의 게임생태계 패러다임이 급변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위 두 사례 모두 대한민국 게임시장의 주된 IP로 정착해온 MMORPG가 아닌 새로운 IP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젠 대한민국의 게임사들도 새로운 슈퍼 IP를 창출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IP 유니버스’를 구축해 나가고 있는 디즈니나 마블처럼, 웹툰, 드라마, 영화 등과 같은 미디어로 글로벌 진출을 시도하고 있는 게임사들이 많아지고 있더군요.

개인적으로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 펜데믹 상황에서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한류 콘텐츠들은 전 세계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글로벌 콘텐츠로 잡아가고 있습니다. 이 분위기에 편승하여 독창적인 한국형 미디어로 슈퍼 IP에 도전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슈퍼 IP는 완성도 높은 스토리와 글로벌 한류 팬들의 마음을 녹일 수 있는 강력한 스토리텔링이 개입되어야 탄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GSOK: 오늘 긴 시간 동안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이재홍 교수: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