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회

2023년 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올해 3월 22일부터 시행된다. 골자는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 의무화다.

법이 통과됨에 따라 게임사는 자사에서 서비스 중인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의 종류와 종류별 공급 확률 정보를 법적으로 게임물, 홈페이지, 광고 및 선전물에 표시해야 할 의무를 갖게 됐다.

게임사들이 그동안 자발적으로 수행해왔던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가 기존 자율규제에서 법적규제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건강한 게임문화 조성과 이용자 보호를 위해 2015년 7월부터 실시되었던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는 약 8년 6개월 만에 막을 내리게 됐다.

자율규제의 노력은 이용자들의 신뢰로 이어지지 못했다. 법적규제를 찬성하는 입장에서도, 자율규제가 신뢰를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실질적인 규제 수단을 통해 지금이라도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율규제의 신뢰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분명 우리가 한 번 더 고민해봐야 할 지점이다.

하지만, 게임산업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기술 발전에 따라 변화하는 고도화된 산업이다. 자율규제가 여러 차례 개정되어 왔던 이유도, 변화를 반영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과연 법적규제가 이러한 변화들을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한 물음표는 여전히 남아 있다. 경직된 법이 게임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해치지는 않을지, 이로 인해 게임산업의 경쟁력이 후퇴되지는 않을지, 우리가 한 번 더 고민해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2.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 목적의 변화

확률형 아이템은 2000년대 중반 우리나라 게임산업에 처음 등장했다. 이용자가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확률형 아이템을 구매하면, 게임사가 정한 확률에 따라 아이템을 얻는 방식이다.

하지만, 원하는 아이템을 얻기 위해 이용자 구매가 이어지며, 과소비를 부추길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어 왔고, 이에 업계는 지난 2015년 7월부터 한국게임산업협회 주도로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를 도입하여 시행해왔다.

이후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는 △2017년 2월(2017년 7월 시행), △2018년 7월, △2021년 5월(2021년 12월 시행) 등 세 차례의 제・개정을 거치면서 발전해왔다.

가장 먼저 도입된 2015년 7월의 자율규제는 일본의 자율규제를 참고하여 만들어졌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앞선 2013년부터 일본온라인게임협회(JOGA)를 중심으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시행해왔다.

당시의 자율규제는 청소년의 무분별한 소비를 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캡슐형 유료 아이템의 결과물 범위 공개 및 경고문구 게시가 주된 내용이었다. 청소년 이용불가 게임물은 공개 대상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최초의 자율규제는 게임사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이끌어내지 못하면서 제도 안착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2017년 2월, 부족한 부분을 개선하는 내용을 담은 ‘건강한 게임문화 조성을 위한 자율규제 강령’을 제정했다.

자율규제 강령에서는 개별 확률과 등급별 구간 확률 중 한 가지를 선택하여 게임 내 등에 공개할 수 있도록 내용을 확대했으며, 주기적으로 게임사들의 자율규제 준수 여부를 모니터링한 보고서도 발간해 게임사들의 동참을 유도했다.

자율규제 강령은 1년 뒤, 한 차례 개정을 맞이한다. 2018년 3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게임산업협회가 함께 ‘건강한 게임문화 조성과 게임 생태계 발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함에 따라, 그 일환으로 2018년 7월에 개정됐다.

개정안에서는 캡슐형 유료 아이템 및 유료 인챈트로 공개 대상 범위를 넓히고, 개별 확률을 구매화면 등에 안내하는 것으로 구체화했다.

2021년 5월에는 추가 개정을 통해, 확률 공개 적용 대상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의 강화안이 마련됐다. 당시 업계의 자율규제 준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낮은 확률과 정보의 신뢰성 측면에서 이용자 불만이 증가한데 따른 것이다.

2021년 5월의 개정은 그동안의 자율규제 제・개정에 있어서 가장 큰 변화였다. 기존에 아이템으로 한정되었던 공개 범위를 효과 및 성능 등을 포함한 콘텐츠로 확장했으며, 그 유형 또한 △캡슐형, △강화형, △합성형으로 세분화했다.


이용자의 직관적 이해를 돕기 위해 확률정보 표시방법도 다각화했다.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개별 확률을 공개하는 기존 방식에 더해 구성 확률이 동등하거나 개별 확률로 표기하기 어려운 경우 등을 감안하여 분수 또는 텍스트의 방식으로도 표시할 수 있도록 했다.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는 최초 유료 캡슐형 아이템에 한해 ‘희박’ 또는 ‘낮음’ 수준의 범위 정보를 표시하는 것에서 시작해 강화형과 합성형까지 연관 콘텐츠를 아울러 개별 정보를 공개하는 방식으로 발전적인 변화를 거듭해왔다.


이는 10년도 채 되지 않은 짧은 자율규제 역사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다양해지는 확률형 아이템 유형에 맞춰 이용자의 알 권리 보장과, 더 나아가 건강한 게임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업계의 자정 노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3.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의 실효성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의 거듭된 변화와 발전에도 불구하고, 그 실효성에 대한 크고 작은 논쟁은 계속되어 왔다. 말 그대로 자율규제이기 때문에 게임사들이 이를 준수하지 않더라도 법적 책임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자율규제 준수율은 강화안이 시행된 2021년 12월부터 법이 통과된 2023년 2월까지 평균 80%를 상회한다. 강화안 시행 초기에는 확률 공개 대상 범위가 넓어진 탓에 70%대로 다소 떨어지는 듯했지만, 점차 준수율을 높여가며 그 실효성을 담보해왔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자율규제 준수 의무를 가진 한국게임산업협회 회원사의 준수율은 거의 100%에 육박한다.

협회 회원사가 아닌 국내 개발사들의 준수율도 90%를 훌쩍 넘는다.


자율규제는 강제력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말이 무색하게, 사실상 거의 모든 국내 게임사들이 자사의 게임에 대한 확률 정보를 공개하면서 이용자 보호에 자발적으로 나선 셈이다.

 

국내 게임사들에게 있어 자율규제 준수의 의미는, 단순히 확률 정보를 공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게임은 게임사와 이용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양방향성을 가진 콘텐츠다. 수많은 게임 콘텐츠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용자와의 소통이 필수적이다.

이에, 국내 게임사들은 이용자들의 요구사항을 반영하고, 이용자와 함께 게임을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을 이어왔다. 그 노력의 결과물이 바로 자율규제 준수율 90~100%라는 숫자로 나타난 것이다.

다만, 한국게임산업협회 회원사가 아니거나 자율규제 준수 의무가 없는 일부 해외 개발사들의 미준수로 인해 전체 준수율이 다소 낮은 선으로 집계됐다.

그럼에도, 외국어 강령 번역본 제공, 미준수 사실 공표 등 지속적인 독려로 해외 게임 개발사들 역시 꾸준히 50%대의 준수율을 유지해왔다.

자율규제와 법적규제의 가장 큰 차이점은 강제성이다. 자율규제는 자발적 준수를 담보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구속력이 없는 반면, 법적규제는 국가의 강제력으로 집행된다.

규제의 수단으로는 강제성을 띠고 있는 법적규제가 민간 차원의 자율규제보다는 더 강력하게 작용한다. 신뢰성 측면에서도 자율규제보다는 법적규제가 더 우수할 수 있다.

하지만, 시장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게임산업의 특성을 고려하면, 자율규제 방식이 나쁘지만은 않다.

게임은 다양한 기술을 통해 만들어진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이에 따라 게임의 업데이트 주기 또한 과거에 비해 점차 짧아지는 추세다. 매주 업데이트를 통해 새로운 유형의 서비스도 등장한다.

자율규제는 이렇게 급변하는 환경과 발전하는 기술에 신속하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규제의 주체가 사업자인 만큼, 대응 방침을 스스로 바꿀 수 있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수단들을 쉽게 활용할 수 있다.

반면, 법적규제의 경우에는 관련 입법 과정이 까다롭고 개정 절차 역시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법률의 제・개정보다는 자율규제의 개정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다. 국제적인 관점에서도 자율규제가 더 부합할 수 있다. 게임은 국경의 구분 없이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서비스된다. 우리나라 게임이 해외에 서비스되듯이, 해외의 게임들도 우리나라에 들어온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규제 준수를 위한 관련 당사자들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법적규제만으로 그 협력을 얻기란 쉽지 않다. 법적규제는 원칙적으로 해당 국가 영역 내에서만 적용되기 때문에, 해외 사업자들은 준수 의무가 없다. 이들에게 강제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법 개정이 수반되어야 한다.


확률형 아이템 법적규제 도입 과정에서 발생한 ‘역차별’ 논란도 같은 맥락에서 비롯됐다.

4.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에 대한 오해

돌이켜보면 자율규제에 대한 오해도 많았다. 자율규제는 자발적 준수를 원칙으로 하고 있어 법적 구속력이 없는 것이 사실이나, 정부 규제로부터의 회피를 위한 것은 아니다.

‘탈(脫)규제’는 과도하거나 시장 요인을 약화하는 공적 규제를 제거하는 데 목적을 두지만, 자율규제는 규제의 틀을 구축하고 운영하는 행위자를 바꾸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자율규제는 민간 영역이 규제의 필요성을 자각하여 스스로 규제하는 경우에도 그 개념을 사용한다.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도 마찬가지다. ‘건강한 게임문화 조성을 위한 자율규제 강령’이라는 제목처럼 이용자 보호의 필요성을 느끼고, 업계가 자발적으로 시행해온 것이다.

건강한 게임문화 조성과 이용자 보호를 위한 자발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는 이제 법적규제로의 전환을 앞두고 있다. 자율규제 강령은 2024년 1월 1일 개정되어 오는 3월 22일까지만 그 효력을 유지한다.

그동안 산업 환경 변화에 맞춰 유연하게 대응해 온 자율규제의 효력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분명 남는다. 하지만, 자율규제를 통해 쌓아온 경험은 앞으로의 법적규제를 대응해 나가는데 있어서도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자율규제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다가오는 3월 22일부터는 법적 의무 준수를 통해 이용자 보호와 건강한 게임문화 조성에 힘쓰는 게임업계의 모습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