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는 실패했는가?

한국에서의 게임 자율규제의 역사는 길지 않다. 2015년부터 시작된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는 2023. 3. 21. 법률 제19242호로 일부개정된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게임법’)을 통해서 확률정보 공개의무가 법제화되면서 법적 규제로 전환되었고, 공식적인 자율규제는 2023. 12.까지만 실시되고 2024. 1.부터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자율규제가 법적 규제로 전환된 것을 근거로 약 8년 6개월간 실시되었던 그동안의 자율규제가 ‘실패’하였다는 평가는 너무 과도하고 인색한 것으로서 받아들이기 힘들 뿐만 아니라, 자율규제의 정착과 성공을 위해서 정말 고군분투하였던 관련 당사자들의 고민과 열정, 노력을 폄훼하는 것이다.

오히려 한국에서의 게임 자율규제는 ‘절반의 성공작’이었다고 자평하고 싶다. 왜냐면 한국에서의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선진적이고 고도화된 자율규제였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쌓아 놓은 자율규제의 경험과 역사는 나중에 언젠가 다시 시도될 수 있는 자율규제의 큰 밑거름과 자양분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하에서는 자율규제의 의미,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의 역사,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 발전과정에서의 주요 모멘텀,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필자의 소회와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2. 자율규제의 의미

소위 ‘자율규제’는 ‘정부규제(혹은 법적 규제)’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 자율규제는 정부규제보다 효율성, 집행과 순응 확보의 용이성, 환경변화의 적응성, 전문성 등에 있어서 우월한 것으로 평가되어왔다.

대개 자율규제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차원에서의 ‘오해’가 존재한다.

첫째, 정부 규제당국은 자율규제를 ‘방임’으로 오해한다는 점이다.
둘째, 규제 대상자인 사업자 및 산업계는 자율규제를 ‘무규제’ 내지 ‘규제완화’로 오해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은 자율규제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율규제의 핵심적인 의미는 ‘규제의 객체’가 ‘규제의 주체’가 된다는 점에 있다. 자율규제는 일정한 경우에는 정부규제의 정당성 및 실효성 문제를 해소해 줄 수 있는 대체재 내지 보완재 역할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자율규제는 방임이 아니고, 무규제나 규제완화도 아니며, 정부규제처럼 유의미하고 실효적인 규제방식이 될 수 있다. 즉 자율규제도 ‘규제’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3.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의 역사

게임 분야의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는 2015년부터 시작되었다. 자율규제는 온라인 게임 및 모바일 게임 모두에 대해서 적용되어 왔다. 아래의 도표는 확률형 아이템 확률정보 공개 자율규제의 변천 과정을 정리한 것이다.

위와 같은 확률형 아이템 확률정보 공개 자율규제의 변천 과정을 ‘시즌’ 개념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율규제의 ‘태동기’(자율규제 시즌 1 – 2015. 7.부터 적용된 확률정보 공개의 시작)이다. 그동안 이루어졌던 개별 게임사업자 차원에서의 산발적인 자율규제를 넘어서서, 이때부터 공식적인 의미의 산업계 차원의 자율규제가 시작된 것이다.

그 배경에는 ① 2014. 11. 청소년 보호를 위한 업계 자율규제 선언 → ② 2015. 4. 자율규제 확대 및 강화안 발표→ ③ 2015. 5. 자율규제 가이드라인 설명회 진행 → ④ 2015. 7. 자율규제 전면 시행 및 모니터링 진행, 미준수 사업자에 준수 권고 등의 과정을 거쳤다.

둘째, 자율규제의 ‘성장기’(자율규제 시즌 2 – 2017. 7.부터 적용된 자율규제평가위원회에 의한 감시 시스템의 구축)이다. 2017. 7.부터 적용된 자율규제 시즌 2에서의 핵심 내용 중의 하나는 ‘자율규제평가위원회’에 의한 감시 시스템의 구축이다. 자율규제평가위원회는 일종의 자율규제 감시기구(self-regulatory body)로서 기능하였고, 설치・구성된 2017. 2.부터 2018. 10.까지는 사단법인 게임문화재단 내의 기구인 ‘게임이용자보호센터’에 설치・운영되었으며, 2018. 11.부터는 본격적인 의미에서의 게임산업계의 자율규제기구로 출범하는 사단법인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에 설치・운영되어 왔다.

셋째, 자율규제의 ‘성숙기’(자율규제 시즌 3 – 2018. 7.부터 적용된 확률정보 공개대상 범위 게임물의 확대 및 개별 아이템 확률정보 공개로의 일원화)이다. 2018. 7.부터 적용되는 자율규제 시즌 3에서의 핵심 내용은 ‘획득확률정보 공개대상 범위 게임물의 확대’와 ‘개별 아이템 획득확률정보 공개로의 일원화’이다. 우선 획득확률정보 공개대상 범위 게임물에 청소년이용불가 게임물이 포함되었고, 더 나아가서 인챈트에 대해서도 획득확률정보 공개대상 범위에 새롭게 포함시켰다.

다음으로 개별 아이템 획득확률정보 공개로의 일원화는, 이전에는 개별 아이템 획득확률정보 공개방식을 원칙으로 하되, 예외적으로 등급별 합산 구성비율 공개방식과 등급별 최소-최대 구성비율 공개방식도 허용하였지만, 이제는 개별 아이템 획득확률정보 공개방식으로 일원화시켰다는 의미이다. 아래의 표가 확률정보 공개방식들의 차이를 보여 준다.

넷째, 자율규제의 ‘고도화기’(자율규제 시즌 4 – 2021. 12.부터 적용된 강화형 콘텐츠 및 합성형 콘텐츠 개별 확률정보 공개 확대)이다. 자율규제 시즌 4의 핵심 내용은, ‘아이템’이라는 용어 대신에 효과 및 성능 등을 포함한 ‘콘텐츠’라는 용어 채택하였고, 기존 유료 캡슐형 콘텐츠뿐만 아니라, 유료 강화형 콘텐츠와 유료 합성형 콘텐츠의 경우에도 성공률 및 결과의
개별 확률정보를 공개하도록 하였다는 점이다.


그런데 위와 같은 자율규제는 2023. 3. 21. 게임법 개정을 통해서 법적 규제로 전환되었고, 법적 의무로 전환된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정보 표시의무 관련 규정들은 동법 부칙 제1조에 따라 공포 후 1년이 경과한 날인 2024. 3. 22.부터 시행되었다.

4.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 발전과정에서의 주요 모멘텀

가. 2016. 11. 확률형 아이템 정책협의체 및 2017. 2. 자율규제평가위원회의 설치 (자율규제 시즌 2의 시작)

2016. 11.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의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 (K-iDEA, 현 한국게임산업협회)에 ‘확률형 아이템 정책협의체’가 구성 및 발족되었다. 이 협의체는 2016. 11. ~ 2017. 1.까지 운영되었다.

확률형 아이템 정책협의체가 출범한 배경은 2015. 7.부터 시행된 자율규제 시즌 1이 1년이 되는 2016. 7. 발표된 문화체육관광부의 ‘게임문화 진흥 종합계획’에 따라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에 대한 평가 및 개선 움직임이 진행되었고, 또한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이용자의 민원 증가, 확률 공개에 대한 국회 법안 발의 등 입법부의 자율규제 강화에 대한 요구가 발생하였다. 이에 현 한국게임산업협회의 전신인 당시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는 학계 전문가, 게임 관련 유관기관, 시민단체, 게임이용자 대표, 사업자 및 협회 등 각계각층의 다양한 전문가가 참여하는 정책협의체를 통하여 보다 진일보한 자율규제 개선 방향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필자는 이 협의체에서 좌장 역할을 맡으면서 자율규제 시즌 2의 설계에 관여한 바 있다. 이 협의체에서의 치열한 토론과 논의의 산물이 바로 2017. 2. 15. 제정되고 2017. 7. 1. 시행된 「건강한 게임문화 조성을 위한 자율규제 강령」(이하 ‘자율규제 강령’)이다. 이 자율규제 강령은 자율규제 시즌 2에 관한 기본적인 자율규범의 성격을 지니는 것이다. 그리고 자율규제 강령의 내용을 구체화하는 자율규범이 2017. 8. 18. 제정・시행된 「건강한 게임문화 조성을 위한 자율규제 강령 시행세칙」이다.

한편 자율규제 강령에 따라 자율규제 시즌 2에서 자율규제 감시기구로서 핵심 역할을 수행하는 자율규제평가위원회가 설치・구성되었다. 2017. 2. 15.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건강한 게임문화 조성을 위한 자율규제 강령」 선포 및 평가위원 위촉식이 성황리에 거행되었고, 이 위촉식에서 필자는 ‘확률형 아이템 정책협의체 경과 및 결과 발표’를 한 바 있다. 또한 필자는 이때부터 자율규제평가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았고, 2024. 1.까지 자율규제평가위원회를 이끌어 왔다. 그리고 2017. 5. 31. 자율규제평가위원회-한국게임산업협회-게임이용자보호센터 3자 간에 「게임이용자보호를 위한 자율규제 업무협약서」가 체결되어, 그 협약식이 한국게임산업협회 대회의실에서 열린바 있다.

나. 2017. 8. 민관 합동 게임 제도개선 협의체와 2018. 11. 한국게임정책자율 기구의 출범(자율규제 시즌 3의 시작)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대통령 후보자 시절 게임업계와의 간담회에서 게임 규제와 관련하여서는 자율규제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공약한 적이 있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 초대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취임한 직후인 2017. 8. 문화체육관광부에 ‘민관 합동 게임 제도개선 협의체’가 꾸려졌고, 필자는 이 협의체의 의장을 맡아 약 6개월에 걸쳐 게임규제 및 제도 개선에 관한 다양한 논의와 정책개선방안이 도출되는 과정을 지켜본 적이 있다.

이 협의체에서의 게임규제 및 제도 개선 논의의 일환으로, 2018. 3. 28. 한국게임산업협회와 문화체육관광부 사이에 「건강한 게임이용문화 조성, 게임생태계 발전 및 청소년보호를 위한 협약서」가 체결되었다. 이 협약서 제2조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는 게임에 대한 인식제고를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게임산업계의 자율규제가 정착될 수 있도록 협조하며, 게임 규제 등에 대한 정책 수립 시 게임산업계의 자율규제 이행상황을 고려하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게임산업협회는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자율규제가 실효성을 갖도록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하여 실행하고, 국민이 건전하게 게임을 이용할 수 있도록 자율규제를 성실히 이행하도록 되어 있다. 이 협약서 체결을 계기로 보다 구체적으로는 한국게임산업협회와 문화체육관광부 사이에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 확대, 독립적인 자율기구 발족, 건강한 게임문화 조성을 위한 대국민 캠페인 전개, 청소년 보호 체계 정비 등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한국게임산업협회와 문화체육관광부 간의 합의를 실천하기 위하여, 기존에 이미 적용되고 있던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를 보다 더 강화하는 차원에서 자율규제 강령이 2018. 7. 1. 개정・시행되면서 이때부터 자율규제 시즌 3이 시작되었고, 또한 2018. 11.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에 대한 독립적인 감시기구이자 게임계 최초의 자율규제기구인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도
출범하였던 것이다.

다. 자율규제 시즌 4의 시작과 배경

2018. 7.부터 자율규제 시즌 3이 시작된 이후에도 게임 비즈니스 모델의 지속적인 변화와 이용자들의 인식 변화에 따라 자율규제 강령의 개정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예컨대,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 자율규제평가위원회는 2019. 7.부터 특히 해외 게임물들의 확률정보 공개 방식과 자율규제 강령에의 포섭 가능성에 대한 검토, 자율규제 강령 개정에 관한 논의를 진행하였다.

그런데 그 와중인 2019. 12. 26. 아래에서 설명하는 확률형 아이템 법적 규제의 내용이 포함된 공정거래위원회의 ‘상품정보제공 고시’ 개정안 행정예고가 이루어지면서,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 자율규제평가위원회 차원에서의 자율규제 강령 개정에 관한 논의는 중단되게 된다. 한국게임 정책자율기구와 한국게임산업협회는 현재 시행 중인 자율규제를 법적 규제로 전환하는 것의 부당함과 부적절성에 대한 의견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지속적으로 전달하였고, 결국 2020. 9. 22. 확률형 아이템 법적 규제의 내용이 빠진 ‘상품정보제공 고시’ 개정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는 자율규제의 진정성과 실효성이 정부 규제당국에 의해 인정된 정말 이례적인 케이스로서, 자율규제 시즌 2부터 자율규제의 설계와 운영에 관여해 온 필자의 입장에서 가장 보람된 일이었다고 생각하는 케이스이다. 아무튼 2020. 11.부터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 자율규제평가위원회는 자율규제 강령 개정 논의를 다시 시작하였고, 보다 구체적인 개정안을 도출하기 위해 ‘자율규제 강령 개정 TF’를 구성・운영하였으며, 이러한 논의과정을 거쳐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 자율규제평가위원회는 2021. 3. 24. 한국게임산업협회에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자율규제 강령 개정을 제안하게 된다.

위와 같은 내용의 자율규제 강령 개정 제안을 한국게임산업협회가 수용하여 2021. 5. 27. 자율규제 강령이 개정되고, 게임산업계에 일정한 준비기간을 준다는 의미에서 이 개정 자율규제 강령은 2021. 12. 1.부터 시행됨으로써, 자율규제 시즌 4가 시작된 것이다.

2021. 5. 27.의 자율규제 강령 개정은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 자율규제평가위원회가 갖고 있는 ‘자율규제 강령 개정 제안권’을 활용한 첫 번째 케이스였다.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 출범 당시인 2018. 11. 9. 제정된 「자율규제평가위원회 운영규정」 제4조 제1항은 자율규제평가위원회의 심의・의결 사항 중의 하나로 ‘자율규제 시행세칙의 제・개정 및 자율규제 강령 개정 제안’(제1호)을 규정하고 있었다. 따라서 자율규제 강령 개정권은 한국게임산업협회가 갖지만, 자율규제 강령 개정 제안권은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 자율규제평가위원회가 갖고 있었다. 따라서 2021. 5. 27.의 자율규제 강령 개정은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 자율규제평가위원회가 주도권을 갖고 추진했던 케이스였다는 점에서,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가 명실공히 독립적인 자율규제기구라는 점을 보여 주었던 사례이다.

 라. 2019. 12. 공정거래위원회 상품정보제공 고시 개정안 행정예고와 2020. 12. 게임법 전면 개정안의 발의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와 한국게임산업협회에 의한 자율규제의 확대 노력 및 과정에서도 정부는 끊임없이 다음과 같이 자율규제를 법적 규제로 전환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첫째, 공정거래위원회는 2019. 12. 26.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 제13조(신원 및 거래조건에 대한 정보의 제공)에 따른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상품 등의 정보제공에 관한 고시」(상품정보제공 고시) 개정안을 행정예고한 바 있다. 당시 상품정보제공 고시 개정안의 주된 내용은 확률형 상품 판매 시 사업자가 공급 가능한 재화 등의 종류 및 종류별 공급 확률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하도록 하는 의무를 사업자에게 부과하는 것이었다. 여기의 확률형 상품에는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도 포함된다는 것이 공정거래위원회의 기본입장이었다.

하지만 게임업계의 반발 및 실제적인 집행의 어려움 등을 고려하여, 공정거래위원회는 동 고시 개정안 중 확률형 상품 부분은 철회를 하였고, 결국 2020. 9. 22. 확률형 아이템 법적 규제의 내용이 빠진 ‘상품정보제공 고시’ 개정이 이루어짐으로써 자율규제를 법적 규제로 전환하려는 정부 규제당국의 시도는 무산되게 된다.

둘째, 2020. 12. 15.에는 이상헌 의원이 대표발의한 「게임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 법률안」(의안번호 : 2106496)이 국회에 제안되었다. 2006년에 제정된 현행 게임법이 급변하는 게임환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게임산업 진흥을 위한 지원책이 모호하고 현실에 맞지 않는 규제를 다수 담고 있다는 문제의식에 기반하여, 게임문화 및 게임산업의 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게임이용자 보호를 강화하며, 불합리한 제도를 정비하는 등 건강한 게임 생태계를 조성하려는 것이 제안이유로 제시되었다. 문제는 이 게임법 전면 개정안의 내용에 그동안 자율규제가 적용되고 있던 확률형 아이템 확률 정보 공개에 대해서 법적 규제로 전환하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게임법의 소관 부처는 문화체육관광부이고, 게임법 전면 개정안이 비록 의원입법의 형식을 빌었지만 사실상 정부입법이었던 점에서, 자율규제를 법적 규제로 전화하는 조항이 포함된 게임법 전면 개정안이 국회에 제안된 것은,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서는 자율규제가 우선적으로 적용되도록 한 약속을 정부가 먼저 깬 것이고, 정부영역과 시장영역이 체결한 2018년도의 협약 위반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정말로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가 실효성이 없어서 현재의 자율규제를 법적 규제로 전환해야 한다면, 정부는 정책파트너인 시장영역과 진지하게 논의를 했어야 했고, 논의과정에서 법적 규제의 필요성에 대한 객관적이고도 과학적 근거를 정부가 제시했어야 했다.

하지만 필자가 과문한지 모르겠지만 이 문제를 게임산업계는 물론이고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와 진지하게 논의하는 과정이 생략되었고,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법적 규제의 필요성에 대한 객관적이고도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정부는 게임 규제에 대한 일관성도 없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일관성 없는 게임 규제정책은 바로 게임 규제에 대한 원칙과 철학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마. 2022. 8. 원 포인트 게임법 개정안의 발의와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의 법적 규제로의 전환

2020. 12. 15.에 국회에 발의된 게임법 전면 개정안의 입법이 지지부진하자,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를 법적 규제로 전환하는 내용의 조항만 입법화하는 원 포인트 게임법 개정안인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 2116804)이 2022. 8. 8. 이상헌의원의 대표발의로 국회에 제안된다.

이 개정안에 대해서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는 2022. 12. 5. 법적인 관점에서 이 개정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확률형 아이템 확률정보 법제화에 대한 ‘게임법개정안’에 대한 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하였고, 2022. 12. 19.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 자율규제평가위원회는 확률형 아이템 확률공개 법제화를 비판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위와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2023. 3. 21. 위 게임법 개정안은 국회를 통과하면서 약 8년 6개월 간 실시되었던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는 법적 규제로 전환되게 된다.

5.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소회와 앞으로 해야 할 일

가.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소회

한국에서는 자율규제가 매우 힘들다. 즉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진단이 가능하겠지만,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시장에 대한 정부의 불신’, 즉 자율규제에 대한 정부의 불신, 게임 규제의 원칙과 철학의 부재에 있다. 그동안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의 정착과 성공을 위해서 나름 노력해 왔던 필자의 입장에서는, 자율규제에
대한 오해와 불신이 큰 상태에서 자율규제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정착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는 결코 ‘실패’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절반의 성공작’이었다고 평가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특히 한국에서의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는 전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선진적이고 고도화된 자율규제였다.

정부와 국회에서 자율규제를 법적 규제로 전환하는 것을 시도하면서 내세웠던 주된 논리 중의 하나가 ‘자율규제의 실효성’, 특히 해외게임의 자율규제 준수 문제였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부당하고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첫째, 그동안 적용되었던 자율규제는 매우 실효성이 높은 규제였다. 실제로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가 수행한 모니터링 대상 게임은 시장점유율 기준 온라인 게임 상위 100위, 모바일 게임 상위 100위까지의 게임이었는데, 한국게임산업협회 회원사 게임은 준수율이 거의 100%에 가까웠으며, 다만 해외게임의 준수율이 60% 정도여서, 평균 80%를 상회하였다. 이러한 자율규제 준수율은 꽤 높은 수치에 해당한다.

둘째, 해외게임의 준수 문제는 법적 규제로 전환된다고 하더라도 동일하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라는 점을 오해하고 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환경에서는 모든 규제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가 바로 해외사업자의 준수 여부이다. 해외사업자는 법적인 의미에서 ‘적용가능성’은 인정되지만, ‘집행가능성’은 부인된다. 즉 법리적인 측면에서 법적 규제는 해외사업자에 대해서 적용은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 집행이 불가능하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확률형 아이템 법적 규제에서도 해외게임의 준수 문제는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고, 법적 규제의 실효성 문제도 당연히 등장하게 마련이다.

나. 앞으로 해야 할 일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이야기하면서 마무리하고자 한다.

첫째, 이제부터는 ‘그 절반의 성공의 역사’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자율규제에 대한 필요나 요구는 앞으로도 존재한다. 이 절반의 성공의 역사를 정리하여, 향후 다시 제기될 수 있는 자율규제에 대한 사회적 요구, 그리고 그 요구에 대응하여 다시 설계 및 운영될 자율규제 시스템이 더이상 좌초하지 않게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는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의 역사를 ‘GSOK 정책백서’의 형태로 정리할 계획이다.

둘째, 약 8년 6개월간 실시되었던 그동안의 자율규제가 막을 내렸다고 해서, 게임산업계는 절대 좌절하거나 포기해서는 안된다. 자율규제가 적용될 수 있고 적용되어야 하는 분야는 앞으로도 많이 등장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의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의 경험은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새로운 자율규제 이슈에 대응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밑거름과 자양분이 될 수 있다. 물론 정부와 이용자들과의 관계에서 신뢰를 다시 얻는 과정과 작업은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