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민 가천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1. 서론

최근 정부 규제 내지 법적 규제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자율규제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된다. 전통적으로 규제는 정부의 고유 영역으로 인식되어 왔으나, 현대의 정부규제는더 이상 행정기관의 독점 영역이 아니라 민간이 참여하는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즉, 규제 독점주의가 규제 다원주의로 변화하고 있는 양상이다. 정부규제는 효율성, 전문성, 실효성 측면에서 한계가 드러나고 있어 민간단체나 사업자 등에게 일부의 규제 권한 및업무를 위임 또는 위탁하여 수행하게 된다. 이는 정부 규제의 한계를 극복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현대 행정에서 피규제기관인 국민이나 사업자가 참여하여 시장의 자율적 규제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성화하는데 이해 당사자의 이슈를 정부정책에 반영하고 조화를 이루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흔히 자율규제라고 불리는 방식으로 정부의 개입은 줄이고 시장 자율을 확대하는 규제 완화 효과가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규제가 보통 타율적인데 자율적으로 한다는 것이 가능하냐, 사업자 스스로 하는 규제는 결국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거 아니냐는 비판적 목소리도 나온다. 과연 자율규제란 무엇이고 어떤 경우 실효성이 있고 효율적으로 작동할까.

2. 연구문헌 검토

자율규제에서 자율의 의미는 개인적 자율과 집단적 자율이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 자율규제는 개인 또는 기업이 스스로 정한 기준과 절차에 의해 자신을 통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집단적 자율규제는 공동의 관심사를 가지고 특정 목적을 추구하는 조직이 구성원에게 규제와 감독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자율규제는 집단적 자율규제를 의미한다(Black, 1996).

자율규제를 통해 정부는 개입을 줄이고 시장의 자율을 확대하는 규제 완화를 추진할수 있다. 법적인 관점에서 자율규제를 정의하자면 공적 부분에서의 규제에 대한 권한을 국가가 직접 행사하지 않고 이를 자율규제기관에 위임함으로써 시장의 자율 규제가 촉진된다고 볼 수 있다(Scholz, 1993).

자율규제는 민간영역이 규제의 필요성을 자각해 자발적으로 규제하는 경우부터 정부가 민간에 규제의 권한을 형식적으로 위임하는 경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을수 있다. 자율규제란 민간영역이 전통적 정부영역에 해당하던 규제영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정부영역은 이러한 민간영역의 활동과 역할에 대해 협력, 지원함으로써 규제의 합리화 및 효율성을 추구하는 규제방식으로 정의된다.

자율규제의 다양한 방식이 정부의 직접적인 규제, 감독보다 경제적으로 우월한 규제수단이라는 경제학 연구도 나왔다(Ogus, 1995). 복잡한 이해관계를 가진 현대적 공동체 내에서 다양한 이익집단 및 제도 간의 갈등 조절 및 의사 소통을 하는 데에 자율규제의 존재 의미가 있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인터넷상에서 청소년 유해정보나 불법정보 관리, 온라인·모바일게임의 확률형 아이템 정보 및 청소년 이용자 보호 분야에서 자율규제가 적용되고 있다.

자율규제는 역사적으로 영미권에서 정부와 기업 관계의 근간을 이뤄왔다. 이는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공공재를 사적으로 공급하는 것이다. 이는 기업들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공동행동을 취하는 것으로 기업 입장에서는 시장참가자들이 자율규제를 준수하는지 감시하는 데는 비용이 들지만 자율규제가 정부의 강제적 규제의 대체재로 기능해 변화하는 사업환경에 보다 잘 대처할 수 있다는 편익을 얻을 수 있다.

3. 자율규제의 경제학적 모델

경제학의 고전연구 중 하나인 호텔링 모델이 있다. 이 모델은 호텔링(Harold Hotelling)이 제시한 제품차별화 모델 중 하나이다. 제품 간 차별화를 직선으로 놓인 상태에서 분석했기 때문에 선형도시모델(Linear City Model)이라고도 한다. 만일 두공급자가 단 하나의 특성마저 동일하게 결정하면 공급자들은 일직선 상에서 같은 지점에 위치하는 반면, 공급자 간 제품 차별화 정도가 클수록 일직선 상에서 공급자들은 멀리 위치하게 된다. 일직선 상에는 공급자뿐만 아니라, 어느 공급자를 방문하여 제품을 구매할지 고민하는 소비자들도 있다. 소비자는 자신의 위치에서 제품이 위치한 곳까지 이동할 때 교통비를 내야 한다. 따라서 자신의 위치와 가까운 기업의 제품일수록 재화 구입에 소요되는 이동비용이 적으므로 소비자가 그 제품을 더 선호하게 된다.

이 호텔링 모델을 이용하면 왜 업계에서 자율규제를 추진하는지 좀 더 명확히 이해할 수있다. 가령 바닷가에서 A와 B는 여름에 해변을 찾는 사람들을 상대로 아이스크림을 팔기로 했다고 하자. 일자로 길게 늘어선 해변에서 A와 B는 비슷한 수익을 얻자고 합의를 하였다. 그렇게 아래 그림1과 같이 A는 해변의 왼쪽에서, B는 오른쪽에서 아이스크림을 판매하기로 했다.

그러던 중, A는 가게 위치를 전보다 오른쪽으로 옮겼더니 매출 금액이 증가했다. 해변 가운데 지점을 기준으로 약간 오른쪽에 있던 사람들은 A가 위치를 옮기기 전까지 가까운 B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샀으나, 이제는 A 가게가 가까워져 A 가게로 바꾼 것이다. 매출이 늘어나자 A는 아래 그림 2와 같이 더 오른쪽으로 가게를 옮겼다. 그러자 매출은 더늘었다.

B는 매출이 감소한 것을 알게 되었고 가게를 더 왼편으로 옮겨 A보다 해변 가운데와 더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게 된다. 이번에는 A의 매출이 줄고, B가 자기보다 더 해변 가운데와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아래 그림 3과 같이 A와 는 해변 한 가운데로 가게를 옮기게 된다.

호텔링 모델은 게임 이론의 고전적인 모델 중 하나로서, 공급자들이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기 위해 전략적 선택을 하다 보면 결과적으로 비슷한 위치에 위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명한다. 실제로 특정 지역에 편의점이 몰려 있거나, 커피숍, 주유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모델은 물리적인 공간의 위치를 설명할 뿐만 아니라, 기업의 상품, 가격 전략을 정하는 과정에서 비슷한 상품군이나 가격대에 집중되는 것을 설명할 수있다.

이제 이 모델을 법적 규제 대비 자율규제 문제에 적용해보자. 현재 우리나라 국회법상 국회에서 의견대립이 첨예한 주요 안건에 대해서는 의결정족수의 60% 찬성이 있어야 법률안 통과가 가능하다(문정빈, 2018). 국회의원 재적 총수가 300명이니 의원 모두가 의결에 참석한다면 180명이 찬성해야 한다. 만일 어떤 법적 규제 법안에 대해 국회의원 의견의 강도를 바탕으로 강력한 규제를 해야 한다는 의원부터 무제한 허용을 해야 한다는 의원까지를 한 줄로 세운다고 가정해보면 법안통과를 원하는 측도 반대하는 측도 180번째 의원 중심으로 이동하게 된다. 아래 그림 4에서 볼 수 있듯이 일반적으로 어떤 사안에 대해 강력한 규제 적용과 무제한 허용 의견 사이에 중립적 의견 중심으로 의원들의 의견들이 정규 분포를 따라 가운데에 집중적으로 위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즉 강력한 법적 규제를 원하더라도 법안통과를 위해서는 규제완화 쪽으로 이동해야 하고 자유방임의 입장이더라도 법안통과를 막기 위해서는 규제강화 쪽으로 이동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규제를 원하지 않던 업계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은 180명 째 의원의 수준으로 규제의 강도를 자율적으로 올리는 것이다.

특히 혁신이 중요한 신산업 분야일수록 경직된 정부 규제보다 시장 및 기술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자율규제가 선호된다. 실제로 최근 연구에 따르면 창업 관련 규제가 강한 나라일수록 1인당 GDP 성장률이 낮다. 과도한 규제로 말미암아 혁신적인 기업가정신이 후퇴하면 신산업에 대한 투자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또한 규제업무를 담당하는 정부보다 민간 산업분야에서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지니고 있다면 자율규제가 보다 효율적이다. 정보의 공개가 기업의 수익과 직접 관련이 있을 경우 정보의 비대칭성이 높아지게 되며 이 경우 자율규제가 더 효과적인 것이다.

4. 결론

본고에서는 경제학 고전 모델 중 하나인 호텔링 모델을 이용하여 자율규제를 설명하고자 하였다. 단순한 모델임에도 불구하고,자율규제를 통해 이뤄지는 규제 수준이 법적 규제 수준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으면서도 효율적인 규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자율규제 프레임워크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분야에서 기업이 영리 추구 외에도 사회적 공익을 목표로 갖게 되는 것에도 적용될 수 있다.

물론 시장지배자가 독과점적 지위를 남용해 시장경쟁과 산업성장을 저해한다면 당연히 법적 규제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인터넷, 게임산업 분야에서 도입된 여러 법적 규제는 급작스럽게 도입된 경우가 많았고 일단 도입된 규제를 걷어내기는 매우 힘들었다. 우리나라 경제에서 혁신 사업과 스타트업들이 해야 할 역할을 고려한다면 규제는 규제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범위 내에서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적용돼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자율규제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시급하다.

□ 참고문헌

  • 문정빈. 2018. 업계의 자율규제, 규제법안 통과 막아줘. 오늘의 CSR, 내일의 법과 산업표준으로. 동아비즈니스리뷰. 243(2).
  • Adams, J., Merrill, S., & Zur, R. (2020). The spatial voting model. In The SAGE Handbook of Research Methods in Political Science and International Relations. London: Sage.
  • Black, J. 1996. Constitutionalizing Self-Regulation, The Modern Law Review, p.26.
  • Ogus, A. 1995. Rethinking self-regulation. Oxford J. Legal Stud., 15, 97.
  • Scholz, J. T. 1993. Responsive Regulation: Transcending the Deregulation Debate.
  • By Ian Ayres and John Braithwait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2.
  • 205p.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87(3), 782-7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