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불과 20년 전 스타트업이었던 게임회사들이 이제는 엄청난 규모로 성장했다. 2017년 기준 국내 전체 게임 시장은 13조 원이 넘고 수조 원 규모의 매출을 내는 게임회사들도 여럿 나왔다. 게임산업에서 만들어진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다른 산업으로 전파되고 있는 패턴도 관찰된다. 과연 게임산업의 비즈니스 모델은 어떻게 생기고 다른 산업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을까?

2. 초기 게임 사업 모델

1990년대 정부 주도의 국민PC 사업이 진행되면서 부담이 낮아진 컴퓨터는 필수 가전제품이 되면서 PC 보급률이 급속도로 올라갔다. 하드웨어와 네트워크가 마련되었지만 소프트웨어는 공짜라는 인식이 강해 불법 복제가 만연했고 대부분의 디지털콘텐츠는 무료였다. 책, 만화, 음악, 영화, 게임 등 종류에 관계 없이 공유 사이트를 통해 불법 복제, 불법 다운로드의 대상이 되었다.

PC게임은 음악 CD와 마찬가지로 콘텐츠가 담긴 원본 CD가 불법 복제될 경우 가상디스크 프로그램을 통해 사용 되었고, 이것으로 인하여 PC게임 시장이 붕괴되었다. 비디오게임 또한 PC게임과 비슷하게 저장장치를 파는 방식의 사업모델을 가지고 있었다. CD나 게임 카트리지가 불법 복제되면 원본과 같은 가치를 갖기 때문에 불법 복제가 늘어나면서 이 사업모델은 지속 가능할 수 없었다.

이런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인터넷을 통해 여러 명의 사용자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온라인게임이 출현하면서 새로운 사업모델로 유료화에 성공했다. 넥슨의 ‘바람의 나라’, NC소프트의 ‘리니지’와 같은 초기 온라인게임은 오랜 기간에 걸쳐 캐릭터를 육성해야 하기 때문에 게임 접속 시간이 긴 사용자들이 유료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른바 정액제 과금 방식을 택했다. 정액제 요금제 사업모델은 월 2만~3만 원 고정 금액을 지불하고 온라인게임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식이다. 지금 기준으로도 2000년대 초 온라인게임의 정액제 요금은 요금은 높은 수준이다. PC방의 경우에는 한 회선당 6~10만 원 내외의 월정액을 내고 PC방 이용자가 따로 온라인게임 요금을 내는 것은 아니고 이용자는 1시간당 약 1,500원 정도의 PC방 요금을 내는 방식으로 유통하였다. 이 무렵, 온라인 커뮤니티 인기 사이트인 프리챌(Freechal)은 잘못된 유료화 도입으로 이용자들이 거의 모두 탈퇴하고 말았다. 유료화 비즈니스 모델 도입은 사업의 명운이 달린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3. 부분유효화 사업모델의 출현

캐주얼 게임이나 후발주자로 시장에 들어선 게임은 정액제 요금제를 채택하기는 어려웠다. 사용자들이 장시간 투자해서 게임을 하지 않고 신규 게임의 가치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월정액을 내는 것은 어려웠기 때문에,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부분유료화(Free to play)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나온다. 부분유료화란 온라인게임 분야에서 무료로 게임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게임 내의 아이템 및 추가적인 콘텐츠를 유료로 판매해 수익을 내는 모델이다.

최초의 부분유료화 비즈니스 모델은 넥슨의 캐주얼 게임 ‘퀴즈퀴즈’에서 실험됐다. 여러 사용자들이 동시에 퀴즈를 푸는 게임으로 퀴즈퀴즈는 서비스 2개월만에 100만명의 회원을 끌어모을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으며, 1999년 대한민국 게임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출시 초기 무료였던 퀴즈퀴즈는 서비스 3개월 만인 2000년 1월 정액제 형태로 유료화로 전환했다. 하지만 유료화는 실패하고 유료화 직후 70%의 이용자가 게임을 떠났다. 당시 퀴즈퀴즈를 즐겼던 이용자들은 게임에 돈을 쓸 준비가 안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위기를 감지한 퀴즈퀴즈 운영진은 부분 유료화를 도입하여 게임은 무료로 서비스하고 아바타나 아이템을 판매하였다. 아바타를 한번 구입할 뿐만 아니라 아바타를 성장시키는 개념을 추가하였고, 다양한 감정표현이나 아이템에 따라 이팩트 도입을 통해 아바타에 역동적인 개념을 부여하였다. 대체로 1,000원 안팎의 아이템과 간단한 소품으로 자신의 성별을 좀 더 강조할 수 있는 성형 기능을 추가한 아이템들이 팔렸다. 일부 아이템은 사회적 기능도 있었는데, 예를 들어, 게임 내 커플은 볼에 키스자국이 찍는 ‘키스 마크’ 아이템을 함께 구매하여 게임 내에서의 애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부분 유료화가 시작된 지 한 달 만에 누적 매출 2억 원을 돌파하는데 성공했다. 또한, 실제 의류 브랜드를 캐릭터 아바타에 활용해 이를 통해 간접 광고를 진행하기도 했는데 이 역시도 온라인게임에서는 최초로 진행된 것이다.

부분유료화 비즈니스 모델은 무료상품을 제공해 이용자 저변을 충분히 확보하고 그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얻은 후 유료의 추가 상품을 제공함으로써 수익을 얻게 된다. 사실 우리나라 게임 분야에서 처음 만들어진 부분유료화 비즈니스 모델이 이제는 유튜브, 링크드인(LinkedIn), 드롭박스(Dropbox), 스포티파이(Spotify), 에버노트(Evernote) 등과 같은 많은 글로벌 플랫폼 비즈니스에서 활용되고 있다. 부분유료화 비즈니스 모델이 영어로는 보통 Freemium이란 용어로 사용되는데 Free와 Premium의 합성어이다. 사실, 이 용어가 생기기 훨씬 전부터 한국 게임 분야에서는 Free to play라는 용어를 쓰기도 했다.

유튜브의 경우, 동영상을 보는 것은 무료이지만 광고를 제거하거나 독점 콘텐츠에 대한 액세스 권한,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받으려면 유튜브 프리미엄에 가입해야 한다. 드롭박스의 경우에는 처음 사용자로 등록하면 2 기가바이트의 클라우드 기반 저장공간이 무료로 제공된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이 사용하게 되어 공간이 부족할 경우 월 소액결제를 해야 한다. 무료 버전만으로도 기본적인 사용에는 문제가 없지만 여럿이서 파일을 공유하거나 사진이나 영상을 백업하려는 사용자들은 용량을 늘릴 필요가 있다. 왜 프리미엄(Freemium) 서비스가 디지털콘텐츠 사업모델로 각광을 받게 되었을까? 우선 무료 서비스와 소개를 통한 사용자 가입을 하도록 함으로써 많은 사용자들을 단기간에 확보할 수 있다. 또한, 사용자 기반을 확보하면서 브랜드 가치가 커지게 된다. 디지털콘텐츠를 제공하는 플랫폼 회사들은 등록 사용자, 활동 사용자 수가 플랫폼 가치를 기하급수적으로 증대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일부 경영학자는 프리미엄(Freemium)을 ‘뉴턴식 참여’ 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이는 뉴턴의 제1운동법칙인 관성의 법칙처럼(외력의 개입으로) 한번 생성된 운동량은 다시 외력의 개입이 있기 전까지 보존(=운동량 보존의 법칙)된다는 논리를 차용한 개념이다. 부분 유료화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적은 금액을 반복결제하게 함으로써 유료화로 유도한다는 것이다. 게임에서 활용되는 기법으로 유료 사용자 비율을 얼마나 가져갈 것인가 하는 문제는 다른 산업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예를 들자면, 링크드인의 경우, 추가 기능을 제공하는 유료화로 넘어가는 비율은 20% 미만이지만 수조 원 수준의 매출을 내고 있다. 하지만 유료화 수준이 높다고 모두 좋은 것은 아니다. 무료 서비스 + 광고를 통한 매출이 더 많을 수도 있다. 일부 경영학 연구에 의하면 5%의 유료화 수준이 매출을 극대화할 수 있다 한다. 물론 서비스의 바이럴, 네트워크 효과가 큰지, 매력적인 서비스인지, 또 회사가 수익이 만들어질 때까지 재정이 확보되는지 등 고려할 요소들은 많이 있다.

4. 게임 사업모델의 다른 산업으로의 확산

최근 급성장 중인 웹툰, 웹소설 플랫폼 중에 카카오페이지가 있다. 카카오페이지의 연간 결제액은 3천억 원 이상이다. 매년 20~30% 수준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일 매출이 10억 원을 뛰어넘었다. 카카오페이지는 ‘기다리면 무료 (Wait or Pay)’ 비즈니스 모델을 채용하였는데 모바일 게임 ‘애니팡’의 게임 아이템 유료화 비즈니스 모델에서 영감을 얻었다. 2014년, 창업 4년 차인 카카오페이지는 여전히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기다리면 무료’는 모바일 게임 애니팡의 핵심 비즈니스 모델로 애니팡에서 게임 이용권인 하트는 결제하지 않더라도 8분이 지나면 1개가 다시 생기고 40분을 기다리면 5개를 다 채울 수 있다. 40분을 참지 못한 사용자들은 친구에게 하트를 요청하거나 그것도 안되면 결제를 했다. 기다리는 시간을 참지 못한 사용자들의 결제 러시가 대박을 터뜨렸다. 모바일 소셜 네트워크 게임 애니팡이 카카오톡 친구들에게 서로 하트를 선물하는 방식으로 소셜 네트워크 강화 효과를 이끌어내었을 뿐만 아니라, 하트 충전을 위해 일정 시간 무료로 기다리거나 돈을 내고 사도록 디자인됐던 것을 카카오페이지에서도 벤치마킹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새로 공개된 웹소설, 웹툰의 에피소드를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읽어도 되지만, 또 어떤 사람은 새로운 에피소드를 기다리지 않고 바로 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카카오페이지는 작은 게임 아이템처럼 웹툰, 웹소설 콘텐츠를 분절했고 이용자들의 콘텐츠 몰입 정도에 따라 콘텐츠 가격을 쉽게 인식하지 못하는 시도를 했다. 예를 들어 웹소설책 한 권을 10개 회차로 잘라서 100원짜리로 만든다. 이는 마치 게임에서 하나의 스테이지처럼 나누어 놓아 이용자들이 웹소설을 읽으면서 몰입하고 쉽게 결제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물론 이용자는 결제를 하지 않고 일정 시간을 기다려서 웹툰, 웹소설을 무료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기다리다 보면 몰입도가 떨어져 재미도 줄어들게 되고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시간을 다시 낼 수 있을지 불확실한 문제도 생긴다. 이 시점이야말로 무료로 소비되던 콘텐츠가 유료로 전환되는 ‘진실의 순간’으로서, 바로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아 콘텐츠를 팔고 단골을 만드는 때이다.

게임의 사업모델이 영향을 미친 독톡한 전통산업 사례로 미트박스를 들 수 있다. 미트박스는 축산물 유통분야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주목받고 있는데, 미트박스의 창업자 중 한 명도 게임산업계 출신이다. 미트박스는 축산물 유통 직거래 플랫폼으로 ‘생산자-중간유통업자-소비자’ 기존 3단계 유통시스템을 ‘생산자-소비자’로 단순화시켰다. 또한, 표준화된 박스를 사용하고 시세를 실시간 반영하여 최대 30% 원가를 절감한 가격에 축산물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축산물 유통산업 혁신에 도전 중이다.

미트박스는 위에 소개된 카카오페이지처럼 플랫폼 전략을 써서 공급업체들로 하여금 품목별 ㎏당 가격, 부위, 원산지, 유통기한, 냉장육, 냉동육 세부적인 정보를 제공하게 했다. 미트박스는 공급업체들 중 가장 저렴한 가격을 제시한 업체를 1번 목록에 올린다. 구매자는 미트박스를 통해 고기 부위별 가격 차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각 업체는 경쟁 기업들과 가격을 비교한 후 수시로 조정하게 된다. 마치 게임 아이템 판매 시장처럼 ‘호가 경쟁 시스템’이 자연스레 구축돼 투명한 거래 환경이 형성된다.

5. 마치며

대한민국 게임산업은 지난 20여 년간 빠른 성장을 해왔다. 인터넷이 도입되면서 게임회사들이 조립 PC 몇 대로 창업하여 시작했지만, 지금 한국 게임산업은 최첨단 기술을 활용하고 세계를 선도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내고 있다. 최근의 게임회사들의 핵심 사업모델은 확률형 아이템이다. 확률형 아이템이란 아이템을 구입했을 때 어떤 아이템이 나올지 알 수 없는 ‘뽑기’ 형식의 아이템을 뜻한다. 일본어로 ‘가챠’로 불리는 경우도 있는데, 가챠는 작은 캡슐 안에 장난감이 들어 있는 뽑기 기계에서 손잡이를 돌릴 때 나는 ‘달그락달그락’ 소리의 일본식 표현 ‘가챠가챠’에서 유래했다 한다. 온라인게임에서 확률형 아이템 사업모델을 처음으로 채택한 게임은 넥슨의 ‘메이플스토리’이다. 당시 일본에서 서비스하던 메이플스토리는 2004년 6월 ‘가챠포티켓’이란 이름의 아이템을 1장당 100엔에 판매하고 그 티켓을 뽑기 자판기에 넣으면 무작위로 아이템이 나오는 방식으로 서비스했다. 넥슨은 2005년 7월 한국에도 확률형 아이템을 도입하여 피그미에그 ‘부화기’를 통해 무작위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서비스를 했다. 이렇게 도입된 확률형 아이템은 현재 거의 모든 온라인, 모바일 게임의 핵심 사업모델이 되었다.

확률형 아이템을 통해 운이 좋은 사용자는 짧은 시간 내에 좋은 아이템을 확보하여 순식간에 레벨을 올릴 수 있다. 좋은 아이템 확보가 단순히 돈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운’이라는 요소가 결합 되게 되었다. 이전의 아이템 구매에 돈을 많이 쓰는 사용자들이 게임에서 절대적으로 유리(Pay to win)하게 하지는 않게 한다는 점에서 게임의 재미를 높인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과소비와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부정적 의견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런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GSOK)는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정보 공개를 통한 건전한 게임 문화가 조성되도록 산·학이 함께 참여하여 독립적으로 자율규제를 추진하고 있다.

확률형 아이템 사업모델은 다른 산업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아직 이 분야에 대해서는 경영학 연구는 부족한 실정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온라인, 모바일 게임에서 나타난 사업모델이 전 세계의 신산업에 활용되고 있으니 흥미로운 사례가 많이 나올 것이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