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그간 게임물로 인해 발생 되는 사회적 문제에 대한 효과적 대응방안으로서 게임물 등급분류에 대한 논의가 많이 이뤄졌고, 해외의 게임등급분류제도 및 등급분류기구에 대해서도 자세히 소개된 바 있다. 그러한 외국의 게임등급분류제도로는 특히 미국의 ESRB, 일본의 CERO, 유럽의 PEGI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어 왔는데, 본고에서는 유럽 PEGI의 조직과 운영을 자율규제 관점에서 재조명해 보고자 한다. 유럽의 PEGI 시스템에 대한 종래의 논의는 대개 등급분류 문제에 국한되어 있었고, 자율규제의 측면, 즉 민간 자율기구의 성격은 큰 관심을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2003년 도입되어 (독일을 제외한) 유럽 대부분 지역에서 뿌리를 내린 PEGI 시스템은 현재 유럽 내 상당한 인지도와 신뢰도를 쌓아 가고 있다.((2012년 유럽 인터액티브 소프트웨어 연합(ISFE)이 의뢰한 소비자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6%가 PEGI 연령등급 표시가 명확하다고 답하였고, 89%가 유용하다고 답한 바 있다. 설문조사의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ISFE European Summary Report, November 2012, 32면 이하 참조<file:///C:/Users/USER/AppData/Local/Microsoft/Windows/INetCache/IE/QKEWC8LP/euro_summary_-_isfe_consumer_study.pdf>.)) PEGI 시스템은 성공적인 자율규제방안으로서 EU 집행위원회(EU Commission)((Communication from the commission of the European parliament, the council, the European economic and social committee and the committee of the regions, on the protection of consumers, in particular minors, in respect of the use of video games, Brussels, 2008, 9면 <https://eur-lex.europa.eu/legal-content/HR/TXT/?uri=CELEX:52008DC0207>.))와 유럽의회(European Parliament)((Toine Manders, Report of the European Parliament on the protection of the consumers, in particular minors, in respect of the use of video games, 2009, article 24 <http://www.europarl.europa.eu/sides/getDoc.do?pubRef=-//EP// TEXT+REPORT+A6-2009-0051+0+DOC+XML+V0//EN>.))에 의해서도 지지 되고 있고, 특히 유럽의회는 게임분야 (미성년)소비자보호에 대한 보고서에서 “게임 등급 분류를 위한 PEGI 시스템은 소비자, 특히 부모가 게임을 구매할 때 해당 게임이 자녀에게 적합한 것인지 판단함에 있어 투명성을 개선할 수 있는 중요한 도구이다”는 견해를 공식적으로 표명한 바 있다. 비록 게임산업이 청소년에게 영향을 미치는 측면이 유럽과 우리의 현실에 있어서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유럽 내에서 높은 신뢰를 받고 있는 PEGI 시스템이 자율규제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게임산업 정책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생각된다. PEGI와 같은 민간 자율기구를 통한 자율규제 동향을 주시하면서 국내 게임업계의 자율규제 활성화를 도모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아래에서는 PEGI의 운영과 조직구조를 살펴보고 국내 자율규제에 대한 시사점을 정리해 보기로 한다.

2. PEGI 설립자와 운영자

PEGI를 설립한 기관은 유럽 인터액티브 소프트웨어 연합(Interactive Software Federation of Europe, ISFE)으로서 EU와 기타 국제기구에 대해 인터액티브 소프트웨어 개발자와 퍼블리셔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서 1998년 설립된 단체이다. 현재 ISFE에는 16개 주요 퍼블리셔들과 18개의 유럽국가 내 사업자 단체들이 회원으로 참가하고 있다.

PEGI 시스템의 실제 운영은 2개의 독립된 기관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우선 2000년에 설립된 네덜란드 시청각 미디어 분류 연구소(Netherlands Institute for the Classification of Audiovisual Media, NICAM)가 PEGI의 위탁을 받아 PEGI 등급분류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이 연구소는 3세 이상의 게임 및 7세 이상의 게임을 관리하고, 프로그래머들에 대한 교육훈련, PEGI 게임의 기록보존, PEGI 라이센스 발급을 위탁 사무로서 담당하고 있다. 그 밖의 12세 이상, 16세 이상, 18세 이상의 게임물 검사·관리는 1989년 영국의 공익법인으로 설립되어 있는 비디오표준위원회의 등급분류위원회(VSC Rating Board)가 담당하고 있다. PEGI는 실제 등급분류 시스템을 운영하는 네덜란드 NICAM 및 영국 VSC Raitng Board와 상시 소통하고, 두 개의 운영기관 간에도 PEGI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지속적인 협력이 이뤄지고 있다.

3. 자율규제 기구로서 PEGI의 조직구조

대개 PEGI(Pan European Game Information)를 ‘범 유럽 게임정보’로 번역하고, 게임등급분류를 행하는 민간 자율기구로 소개되고 있지만,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PEGI 그 자체는 등급분류 시스템을 말하고, 이러한 PEGI 시스템의 일상적 운영, 감독 및 개발을 담당하는 기구는 PEGI S.A.이다. PEGI S.A.는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는 비영리 독립회사로서 벨기에 법에 따라 설립된 조직인데, PEGI 행동강령(PEGI Code of Conduct)((PEGI 행동강령 전문은 “https://pegi.info/pegi-code-of-conduct”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제12조에 따라 PEGI 운영이사회 및 PEGI 위원회 등의 여러 기구를 통해 운영되고 있다.((PEGI의 조직구조에 대한 소개로 김학범(2018), 범유럽 게임정보의 게임물 등급분류에 관한 연구, 한국중독범죄학회보 제8권 제2호, 27면 이하 참조.))

가. PEGI 운영이사회(PEGI Management Board)

PEGI 운영이사회는 PEGI의 핵심 조직으로서, PEGI의 일상적 활동을 수행하는 대표이사는 PEGI 운영 이사회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 구체적으로 운영이사회는 게임 퍼블리셔·게임 개발자·콘솔 게임 제조자, 국가별 사업자단체 등 업계를 대변하는 자, (아래에서 설명할) PEGI 위원회와 PEGI 전문가 그룹의 대표자로 구성되는데, 효율적인 업무 수행과 더불어 자율규제 기능이 잘 발현될 수 있도록 적절한 감시·감독을 보장하는 조직구조를 지향하고 있다.

나. PEGI 위원회(PEGI Council)

현재 PEGI 등급분류는 유럽 내 35개 이상 국가에서 이용되고 있고, 따라서 PEGI 시스템과 행동강령이 개별 국가들 내 사회적, 정치적, 법적 환경변화와 조화를 이루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에 PEGI 위원회는 유럽 차원 내지 개별 국가 차원의 환경 변화가 PEGI 시스템 및 행동강령에 잘 반영되고 상호 소통이 가능하도록 권고할 책임을 부담하고 있다. 이와 같이 PEGI와 개별 유럽 국가 간의 원활한 소통을 보장하기 위해서 PEGI 위원회의 위원들은 1차적으로 해당 국가의 당국에서 청소년 보호에 식견이 있는 공무원, 심리학자, 미디어 전문가, 법률 전문가들로 구성된다. 현재 PEGI 위원회 구성에 참가하고 있는 개별 유럽국가의 당국들로는 예컨대 오스트리아의 연방수상청 청소년정책국(Abteilung Jugendpolitik, Bundeskanzleramt), 스위스의 연방 사회보장·청소년보호청(Bundesamt für Sozialversicherungen – Jugendschutz), EU 집행위원회(EU Commission) 등이 있고, 총 16인의 위원이 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다.((PEGI 위원회를 구성하는 위원들은 “https://pegi.info/page/ pegi-committees”에서 확인할 수 있다))

PEGI의 의견을 한 목소리로 개별 국가에 전달할 수 있고, 역으로 개별 국가 내 당국들의 목소리도 PEGI에 전달이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적지 않은 PEGI 위원회는 최소 1년에 한 번 이상 개최되고 있고, PEGI 운영이사회나 전문가 그룹과 연계하여 다수의 회의가 개최되고 있다.

다. PEGI 전문가 그룹(PEGI Experts Group)

PEGI 위원회의 경우 개별 유럽국가들을 대변하는 것에 중점이 있는 반면, PEGI 전문가 그룹은 PEGI에 중요한 자문을 수행할 수 있는 전문가 네트워크라 할 수 있다. 미디어, 심리학, 법, 기술, 디지털 환경 분야 등에서 다양한 전문가와 학자들이 PEGI 전문가 그룹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이들 전문가들은 PEGI 운영이사회, 위원회 또는 불만처리절차를 통해 조명된 문제들을 검토하는 등 PEGI에 대한 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현재 총 9인의 위원들이 PEGI 전문가 그룹을 구성하고 있다.((PEGI 전문가 그룹을 구성하는 위원들은 “https://pegi.info/page/ pegi-committees”에서 확인할 수 있다.))

라. PEGI 불만처리 위원회(PEGI Complaints Board)

PEGI 불만처리 위원회는 PEGI 운영이사회에 의해 2년 임기로 선임된 독립적 전문가들로 구성된다. 불만처리 위원회의 위원들은 개인의 역량, 경험 및 활동 분야 등이 고려되어 선임되는데, 유럽 내 미성년자 보호에 정통한 (학)부모, 소비자단체, 아동심리학자, 미디어 전문가, 학계 및 법률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됨이 일반적이고, 현재 총 8인의 위원이 불만처리 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PEGI 불만처리 위원회를 구성하는 위원들은 “https://pegi.info/page/ pegi-committees”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연령등급 분류와 관련하여 게임 퍼블리셔나 소비자가 불만을 제기하였는데, PEGI 시스템을 실제 운영하고 있는 네덜란드 시청각 미디어 분류 연구소 내지 영국 비디오표준위원회의 등급분류위원회에서 만족스러운 해결이 불가능한 경우에 불만 제기자가 공식적으로 PEGI 불만처리 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할 수 있다. 이러한 조정이 신청되면 PEGI S.A.의 대표이사가 해당 민원의 특성과 분쟁해결에 필요한 전문성 등을 고려하여 불만처리 위원회 위원 중 3인을 지정하여 특별 불만처리 위원회(Ad hoc complaint board, AHCB)를 조직한다. 그 후 조정 신청자에 의해 접수된 서류들이 위원과 조정 상대방에게 발송되고, 위원들은 오프라인상의 회의를 개최하거나 필요에 따라 e-mail·전화 등을 통해 협의를 진행하며, 과반수 이상의 의견에 따라 불만처리 위원회의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된다.

불만처리 위원회는 게임 퍼블리셔가 PEGI 행동 강령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 PEGI 집행위원회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지시할 권한이 있고, 게임의 등급이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등급 재조정을 요청할 수 있다. 특히 게임 퍼블리셔 등 PEGI 시스템에 가입되어 있는 사업자들은 불만처리 위원회가 내린 결정에 구속되어, 필요한 시정 조치를 수행해야 할 의무가 부과되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 PEGI 행동 강령을 근거로 제재를 받을 수 있다.

마. PEGI 법률 위원회(PEGI Legal Committee) 및 PEGI 집행위원회(PEGI Enforcement Committee)

그 밖에 유럽 내 개별 국가 내의 법령 개정 등 환경 변화가 발생하는 경우 PEGI에 이를 전달해 주는 기구로 PEGI 법률 위원회가 운영되고 있고, PEGI 행동 강령 규정의 집행을 담당하는 PEGI 집행 위원회가 조직되어 있다. 집행위원회의 경우 10인의 위원으로 구성되는데 5인은 게임 퍼블리셔 중에서, 나머지 5인은 PEGI 위원회에서 선출된다.

4. 국내 자율규제에 대한 시사점

지금까지 살펴본 유럽의 PEGI 조직과 운영을 자율규제 관점에서 분석해 보면 PEGI가 게임업계의 자율규제기구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의 참여를 보장하고, 이를 통해 업계의 신뢰도 향상과 위상 강화를 스스로 도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미디어․심리학․법․기술․디지털 환경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PEGI 위원회․전문가 그룹․불만처리 위원회를 구성하고 있고, 게임업계․(학)부모․소비자단체․학계․법집행 당국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자율규제 기구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또한 각종 위원회의 위원들의 독립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조직 운영을 최적화하고 있다는 점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PEGI 시스템 그 자체는 자율규제 방안임에도 불구하고 유럽 내에서 법을 집행하는 행정청에 버금가는 신뢰와 위상을 가지게 되었다.

나아가 게임산업 분야 법집행 당국과의 소통창구로서 역할을 담당하는 PEGI 위원회 운영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PEGI는 민간자율기구이므로 정부기관을 대변하는 자가 PEGI에 직접적으로 지시를 내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PEGI 위원회는 당국과 업계의 소통창구로서 정부 차원에서의 정책추진상황과 민간 차원에서의 자율규제 기능이 조화롭게 추진될 수 있도록, 궁극적으로 게임산업 분야의 자율적 이용자 보호 조치가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플랫폼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우리의 게임자율규제기구도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소통의 장으로서 게임 이용자 보호의 성공적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PEGI에서와 같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게임 분야 민간자율기구를 통해 소통하고 화합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정부차원의 강제적 조치 없이도 투명하고, 신뢰할 만한 조직과 운영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유럽 내 성공적인 민간자율기구로 인정받고 있는 PEGI 시스템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함께 국내 게임업계의 자율규제 활성화 도모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