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COVID-19라는 전대미문의 바이러스는 우리를 새로운 시대에 직면하게 하였다. 의료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구조 및 활동, 국제관계지형까지 이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형태와 수준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방식 하나하나까지도 남김없이 바뀌어 가고 있다. 게다가 이것은 예전의 형태로 돌아가기 어려운, 상당부분 비가역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소위 ‘뉴노멀(New Normal)’의 시대다.

이 뉴노멀에 대비하는 각국 정부의 자세와 정책은 어떠하였는가. 그 구체적인 내용을 다루는 것은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나므로 초기 대응의 두 가지 큰 방향성을 살펴보자. 그것은 봉쇄(Lock Down)와 자가격리(Self Quarantine)이다.

전자는 주로 초기 구미권의 대응이었다. 우선 외부에 대한 봉쇄, 즉 바이러스가 급속히 확산되던 아시아 몇 개국으로부터의 입국 금지 조치였다. 이것이 실패하면서 이어진 것은 내부에 대한 봉쇄, 즉 시민들과 사업장의 이동금지 조치였다. 이것은 어느 정도 바이러스 확산을 늦출 수 있었으나 전 국가적인 봉쇄는 몇 개월도 지속되기 어려웠다. 결국 봉쇄는 해제되고, 바이러스 확산은 재개되었다.

후자는 우리나라의 대응이었다. 확진자와 접촉자를 끈질기게 추적하고 격리하였으며, 시민들에게 자율적인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력하게 권장하였다. 이에 대한 실증적 근거는 실험과 시뮬레이션, 확산 저감 결과 등을 통해 나중에야 확보되었으나 시민들은 정부의 선제적 조치를 믿고 따랐다. 그 결과,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우리나라는 전국적 봉쇄조치없이 초기 확산을 막은 거의 유일한 나라로 세계에 자리매김하게 되었다(그림 1).

COVID-19에 대한 대처 방식과 뉴노멀 시대가 문화콘텐츠, 그 중에서도 게임계에 던지는 화두는 무엇일까. 아니, 게임계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 모두는 그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2. 유사 생명체로서의 문화콘텐츠

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그의 책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에서 반복적으로 ‘유전되고 변이되어 자연 선택을 받아’ 살아 남는 유전자(Gene)를 생명체의 본질로 보았다. 그리고 그러한 진화생물학적 관점을 문화 현상에도 적용하여 모방(Mimesis)적으로 ‘유전・변이・선택’되는 문화적 요소를 하나의 유사 생명체인 밈(Meme)으로 정의하였다. 문화콘텐츠를 포함한 문화적 요소・재료들은 ‘살아 남기’ 위해서 끊임없이 변화되어 퍼져나가는 하나의 생명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을 통해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유사 생명체로 여겨지는 생물학적 바이러스의 확산을 우리가 근원적으로 막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밈 또한 우리가 강제로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유전자의 ‘탈 것(Vehicle)’이라고 말해졌던 숙주인 인간의 행동을 통제함으로써 확산의 수준과 변이의 양상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 행동은 어떻게 통제해야 하는가.

극단적으로 강제하는 방식, 즉 ‘봉쇄’가 유효하지 않다는 것은 이번 COVID-19 대처에서 세계적으로 확인되었다. 최소한의 의식주 생활을 해야 하는 ‘인간 모두’를 장기간 봉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문화콘텐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문제가 있어 보이는 특정 문화콘텐츠를 봉쇄한다고 해도 그를 즐기는 ‘향유자’가 있는 이상, 그것이 ‘변이되어 유전되는’ 것을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문화콘텐츠에 대해서도 우리나라 방역당국이 채택하였던 자율에 기반한 추적과 격리 전략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3. 자율과 규제

기존에 없던 것을 창의적으로 만들어내거나 기존의 해석을 바꾸어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 내는 문화콘텐츠는, 그 본질상 끊임없이 사회적 논란거리를 생산해 낼 수밖에 없다. 특히 상호작용에 기반해 즐기는 컴퓨터 게임(이하 게임)의 경우, 몰입성이 높고 콘텐츠 향유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어 여러 사회적 논의를 촉발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서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게임법)이 2006년에 제정되어 정부 중심의 규제 행정이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문화콘텐츠 중에서도 기술 기반으로 가장 역동적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콘텐츠 중 하나인 게임을 경직된 법조문에 근거하여 규제하는 것은 게임 향유자 및 제작자 모두에게 불편과 불만을 불러 일으켰다. 이에 ‘법적 규제’에 대항하여 게임 산업 참여자들이 자발적으로 부작용을 최소화해 나가는, 소위 ‘자율 규제’에 대한 논의와 활동이 시작되었다.

문제는 ‘자율 규제’라는 용어에 논리적으로 모순이 있다는 것이다. ‘자율’은 스스로 하는 것인데 ‘규제’는 남이 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하지 않기 때문에 남이 강제로 하는 것이 규제인데, ‘자율 규제’를 하거나 할 수 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실효적으로도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현재 논쟁되고 있는 ‘법적 규제’와 ‘자율 규제’라는 대립구도는 애초에 논리적으로 흠결이 있어 논의가 공전될 수밖에 없는 구도이다.

또한 ‘규제의 관점’에서 진행되는 이러한 논쟁은 문화콘텐츠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분법(Dichotomy)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비효율적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문화콘텐츠의 전파는 ‘봉쇄적으로’ 막을 수 없으므로 봉쇄(규제)냐 아니냐 하는 극단적 해결 방식은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국제 플랫폼을 통해 디지털 서비스화 된 지 오래된 게임은 특정 국가의 (법적이든 자율이든) 규제를 우회하여 소비되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자율 규제’는 ‘자율 &(and) 규제’로 바꾸어 읽어야 한다. 그리고 자율과 규제의 ‘사이(間)’를 인정하고 이 간극을 메우는 노력을 정책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소위 거버넌스를 정립해야 한다.

4. 첨단기술기반 문화콘텐츠와 거버넌스

거버넌스(Governance)란 직역하면 어떤 조직이나 사회의 지배 방식 혹은 지배 구조를 뜻하지만, 최근의 함의는 단순한 지배 구조, 특히 일방향적・독점적 지배 구조가 아니라 다양한 정체성・주체성을 가진 그룹들의 공통의 관심사에 대한 협력적・합의적 지배 구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거버넌스는 ‘협치’로 번역되어 이해되기도 한다.

문화콘텐츠 중에서도 게임은 특히 이 거버넌스가 더욱 필요한 분야이다. 한 번 제작되면 향유자에게 거의 일방향적으로 전달되기만 하는 다른 문화콘텐츠와 달리 게임은 향유자가 능동적으로 콘텐츠와 상호작용(Interaction)하면서 몰입적으로 즐기는 형태이다. 게임 제작자(사)가 ‘게이머’들의 향유 패턴과 요구사항을 최대한 신속히 반영하여 주기적으로 업데이트 혹은 소위 패치(Patch)를 내놓게 되는 것 또한 바로 이러한 특성 때문이다.

따라서 이렇게 끊임없이 빠른 속도로 변화(혹은 진화)되어 나가는 게임에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요소가 포함될 때 이를 바로잡는 데에는 정부기관의 개입뿐만 아니라, 게임제작사 및 게이머들의 적극적 협력이 필요하다. 특히 첨단기술기반 문화콘텐츠로서 새로운 세계(Another World)를 창조해 나가는 게임은 기존 세계에서 논의되지 않았던 혹은 문제되지 않았던 여러 이슈들을 돌발적으로 또 날카롭게 제기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다양한 관점을 가진 시민사회의 성숙된 논의 또한 마찬가지로 필요하다. 즉, 게임의 제작과 향유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영향을 받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협의하고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거버넌스가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5. 게임 생태계를 위한 거버넌스

사실 게임의 특성을 고려한 거버넌스 체제는 이미 걸음마를 시작한 지 오래다. 2013년에 출범한 게임물관리위원회는 바로 이러한 사회적 협의기구의 성격을 바탕으로 ‘사후 관리’에 초점을 맞추어 설립된 공공기관이다. 2014년 출범한 게임콘텐츠등급분류위원회(GCRB) 또한 민간등급분류기관으로서 ‘규제’에 참여하고 있으며, 2016년경부터는 게임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 또한 자체등급분류사업자로 지정되어 이에 참여하고 있다.

상기의 기관/기업들이 법령에 근거하여 규제 행정을 대리하는 것이라면, 순전히 민간에서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기관들도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2016년 출범한 게임이용자보호센터, 2018년 출범한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각종 민간 위원회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자율과 규제의 양 측면에서 태동・발전하고 있는 기관 및 기구들은 여전히 거의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활동할 뿐 유의미하게 ‘협의・협력’하지는 못하고 있다. 양쪽의 입장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바도 있겠지만, 다음 세 가지 요인을 더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게이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기구의 결여다. 결국 자율도 규제도 게이머들을 위한 것임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정작 그 논의와 운영에서 게이머들의 목소리를 담아 전할 수 있는 명시적 틀이 빠져있다는 것이 현재 구도의 근원적 한계다. 결국 양쪽의 입장차를 좁힐 동인(動因)은 콘텐츠의 소비자이자 ‘자율&규제’의 수혜자인 게이머의 의견과 행동에서 비롯될 수밖에 없다. 또한 게임을 밈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 밈의 생존을 결정하는 선택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 향유자인 게이머이기에 이러한 ‘실질적 권력’의 의견을 ‘자율&규제’에 반영하는 것이 당연하다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과학적・기술적 메커니즘과 데이터에 기반한 논의 플랫폼 부재이다. 게이머들이 주관적이고 체감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게임 서비스의 형태와 게임 제작/제공사들이 파악하고 있는 운영 데이터, 행정 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게임 산업에 대한 데이터가 서로 다르거나 중첩되지 않으므로 논제의 설정, 논의의 근거에 대한 상호 신뢰, 문제의 수준에 대한 인식 등에서 차이가 커 유효한 논의를 이끌어 가기 어렵다. COVID-19 확진자의 추적과 격리 및 사회적 거리두기도 과학적으로 검증된 진단키트, 확진자수 추이 및 확진자 동선 공개, 확산 시뮬레이션 검증 등을 바탕으로 한 신뢰 위에서 시민들의 협력 하에 가능했던 것을 상기해 보면, 객관적 검증 혹은 납득이 가능한 공통 기반(Common Ground)을 만들 수 있어야 자율과 협력에 기반한 실효성 있는 거버넌스 체제 구축이 가능할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

세 번째는 명시적 거버넌스 체계의 부재다.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위원 위촉에는 시민사회 각 영역에서의 추천이 뒷받침되고 있고, 민간등급분류기관 및 자체등급분류사업자 또한 법령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거버넌스에 대한 이러한 종류의 ‘묵시적 명문화’는 단지 규제 행정의 기준에서 참여자들을 ‘수직화’하는 결과를 낳을 뿐 대등한 협의와 협력이 필요한 거버넌스 체제 구축을 촉진하지는 못한다. 요컨대 이미 주어진 법령의 미묘한 자구 해석 이상의 결과물을 내놓을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이는 매일 매시간 변화되어 나가는 진화생명체로서의 문화콘텐츠를 사전에 정의한 법문의 기준에 가두고 참여자들이 ‘죽은 논의’밖에 할 수 없게 만든다.

법치에 근간한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우리나라에서 모든 사회적 행동은 법에 기초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창의와 자유가 핵심인 문화콘텐츠의 영역에서 법은 사회적 논의가 포용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틀을 마련하는 데 그쳐야 한다. 물론 위험부담이 있을 수 있다. 너무 빠르게 자유도를 높이다 큰 사회문제에 맞닥뜨린 경험도 우리는 가지고 있다. 따라서 차근차근 발전시켜 나가야 하겠지만, COVID-19 대처에서 확인한 우리나라 시민들의 민주적 역량은 이전보다 훨씬 성숙되어 있었으며, 이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조금 더 미래지향적인 ─ 뉴노멀 시대에 걸맞는 거버넌스를 구축할 만한 시기가 되지 않았을까 기대해 본다.

6. 마치며

밈 학자(Memeticist)인 수전 블랙모어(Susan Blackmore) 박사는 인공지능 기술혁명 시대에서의 밈 현상을 다시금 고찰하여 ‘팀(Teme; Technological Meme)’이란 개념을 제안하였다.((Susan Blackmore, (2008). Memes and “temes.” TED2008 February Conference.))((Susan Blackmore. (2010). The Third Replicator. The Stone, The New York Times, Aug. 22, 2010.)) ‘진화생명체’ 생존에 대한 선택의 권한이 자연(Gene)에서 인간(Meme), 다시 기술/기계(Teme)로 넘어가는 현상을 날카롭게 지적한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영화나 소설 등에서 디스토피아적 미래 세계 모습이 그려지는 기저 메커니즘을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다. 요컨대 자연으로부터 권한을 넘겨받은 우리가 다시 그 권한을 놓치게 되는 것에 대한 본능적・직관적 두려움인 것이다.

그러한 암울한 미래 세계의 도래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선택의 권한’을 놓지 않으려는 노력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권한을 일부러 내려놓은 것이 아니라 권력이 이동(Power Shift)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실효적인 방법은 실질 권한을 가진 다양한 참여자들을 인정하고 이들을 모두 포함한 협의・협력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것이 성숙한 민주주의 위에서 효과적인 COVID-19 방역을 달성해낸 우리나라가 첨단기술기반 문화콘텐츠 또한 건강하게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합리적인 전략일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