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전 세계적으로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상용화된 2000년 이후 사람들은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미디어, 공론장에 열광하면서도 다른 한편 부작용으로 인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모으기도 하였다. 특히 1990년대 후반 정부가 주도적으로 인터넷 망을 확충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초고속 인터넷망을 갖추게 된 우리나라의 경우 인터넷을 통한 새로운 산업의 성장, 문화의 발전과 같은 장점 이외에도, 명예훼손, 청소년 유해물의 범람과 같은 역기능도 나타나 사회문제화 되었다.

정부는 이러한 인터넷의 역기능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른 국가와는 다른 방식으로 대응해왔다. 외국은 인터넷 매체가 가진 개방성이라는 장점을 살리면서 반드시 규제가 필요한 부분에 대한 대응을 주로 해왔다. 이로 인해 독일의 미디어자율규제기구(FSM), 영국의 인터넷 감시재단(IWF) 등이 출범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국가 주도하에 공적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인터넷을 규율해왔다. 인터넷 제한적 실명제, 포괄적인 불법 게시물 유통금지 조항 등이 그러하였다.

강력한 정부규제는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에 대한 지나친 위축효과를 낳았음에도, 이후에도 규제 목표였던 인터넷 환경의 역기능 현상을 효과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했다. 실명제하에서도 이른바 ‘악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으며, 강력한 청소년 보호 정책에도 인터넷에서는 지금도 음란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효과가 적은 공적규제를 대신하여 인터넷 서비스 업체를 중심으로 공동 자율규제를 마련함으로써, 인터넷의 개방성을 살리면서도, 역기능을 효과적으로 제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이러한 배경하에 2008년 3월, 인터넷 사업자들이 이용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신장하는 동시에, 이용자의 책임을 제고해 인터넷이 신뢰받는 정보소통의 장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사)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이하 ‘KISO’)를 설립하게 된다.

본 글에서는 그간의 KISO의 자율규제 역할을 돌아보고, 이러한 역할이 회원사 나아가 사회 문화 전체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를 간단히 설명해보고자 한다.

2. KISO 자율규제의 역할

가. KISO의 자율규제의 환경

KISO는 다양한 성격의 사업자가 참여하고 있다. 대형 포털을 운영하는 사업자뿐만 아니라, 소규모 커뮤니티 서비스 사업자 등도 참여하고 있어, 각 회원사의 규모, 주요 서비스가 다양하다. 또한 민간 자율규제는 법적으로 어떠한 영역을 반드시 수행하여야 하는 의무와 역할이 있는 것은 아니다. 더 나아가 사업자가 자신의 서비스에 맞춰 자체적으로 자율규제를 수행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KISO의 자율규제는 공적규제와 달리 인터넷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데 그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다양한 회원사가 모두 공통으로 규칙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부분을 중심적으로 정책과 사안을 검토하고 이에 대해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인터넷의 환경의 변화, 회원사 혹은 사회적 요구에 따라 기능이 추가되고, 일부 변경되기도 하지만, 게시물 등의 명예훼손 등에 대한 처리와 국민의 표현의 자유, 알권리 보호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영역은 하나의 사업자보다 다양한 사업자가 공동으로 기준을 따를 때 그 효과가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나. KISO 자율규제의 역할

1) 공동의 규칙 마련

KISO 자율규제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공동의 규칙 마련이다. 법적으로 시행이 강요되는 공적규제와 달리 자율규제는 참여자들의 자발적 실행이 중요하므로, 공동의 규칙을 마련하는 역할은 자율규제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면서 가장 어려운 역할이기도 하다. 참여하는 사업자의 경제적, 기술적 여건, 이용자의 성격, 제공하는 서비스 등이 전부 다른 상황에서, 이상적이지만, 일부 회원사만 수행가능 할 정도로 비용이 드는 공동규제, 특정 이용자층에게 불이익을 주는 자율규제, 실제 사업자가 필요한 규제 효과 없는 자율규제는 실효성이 떨어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KISO는 내부 정책결정기관인 정책위원회를 통해 외부 전문가, 회원사 실무진 간의 치열한 토론을 통해 공동의 규칙을 마련하고 있다. KISO의 규칙은 법률과 같이 엄격한 것이 아니므로 새로운 상황에 맞춰 수정이 가능하지만, 쉽사리 제정 혹은 수정 되는 것을 막고 모든 사업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제정과 수정에 정책위원 전원의 동의를 그 요건으로 하고 있다.

KISO는 명예훼손 주장 게시물 처리와 관련하여 그 임시 처리 절차 및 분쟁조정 절차를 규정하여, 명예훼손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와 동시에 국민의 알권리 등이 우선되는 정무직 공무원 등 공인에 대한 일정한 경우는 엄격한 소명을 요구하는 규정을 마련하여 현재까지 시행하고 있다. 또한 검색어에 대한 기준 역시 마련하여 이용자의 편의성,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면서도 검색어 서비스로 인한 명예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2) 개별 사안에 대한 자문

KISO는 마련한 자율정책을 바탕으로 회원사의 구체적인 서비스 운영에 대한 자문을 수행한다. KISO의 ‘심의결정’은 개별 게시물 등에 대해 정책에 맞춰 처리 방안을 질의하면 이에 대해 회원사 소속이 아닌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정책위원회에서 다수결로 게시물 등의 삭제 여부를 심의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새로운 정책 마련 혹은 기존 정책 수정의 단초가 제공되기도 한다. 심의결정은 질의한 회원사에게 공개하는 것을 넘어, 다른 회원사 및 일반에게 공개하여 KISO 정책의 투명성을 높이고, 다른 회원사에게도 유사한 건에 대한 처리 기준을 제공하기도 한다.

[표 1] 연도별 심의결정 대상 건수(안건)

3) 자율규제 직접 수행 등

이러한 역할을 넘어 회원사의 요청에 의해 검증한다. 또한 KISO가 직접 자율규제를 수행하거나, 회원사가 수행한 자율규제를 평가·검토하는 역할도 일부 수행하고 있다.

KISO 산하 부동산매물클린관리센터는 온라인상의 거짓 부동산 매물에 대해 이용자 신고가 있을 경우 직접 확인을 통해 해당 물건이 진실한 물건인지를 검토하고 있다. 해당 광고가 허위로 밝혀질 경우 해당 매물을 올린 부동산 공인중개사에게 규정에 정의된 페널티를 부여하기도 한다.

또한, 네이버 검색어 검증위원회는 독립적으로 네이버의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연관검색어 등의 운영 및 처리가 적정하게 수행되었는지를 평가한다. 검증위원회는 독립적으로 검토할 사항을 정하고, 자료를 네이버에 요청하여 이를 바탕으로 검증한다. 또한 검증결과를 공개하여 투명성을 높이고 있다.

3. KISO 자율규제가 가져온 지형의 변화

가. 회원사의 변화

KISO 자율규제가 지속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참여하는 회원사가 KISO의 공동자율규제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율규제의 수행에 따라 회원사에게 생긴 변화를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서비스 운영 개선

KISO가 주로 자율규제 하는 명예훼손 관련 게시물 등의 정책은 명예훼손을 효과적으로 제어하면서도, 정무직 공무원 등의 공인에 대한 비판은 허용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게시물뿐만 아니라 연관검색어·자동완성 검색어 등도 명확한 처리가 가능해져 이용자에게 알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KISO의 게시물 관련 정책 초기에 혼란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다. 특히 KISO의 정책이 원칙적으로 사회적으로 저명한 정무직 공무원 등 공인에 대한 비판을 삭제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에 삭제 또는 차단해왔던 공인에 대한 게시물 삭제를 거절하는 것이 사업자에게 부담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지속적으로 모든 회원사가 KISO의 정책에 따라 공인에 대한 명예훼손 게시물 임시조치를 제한하고, 허위사실이 소명된 경우 등 일정한 경우에만 처리하는 것을 반복한 결과, 현재는 해당 조항의 대상이 되는 정무직 공무원 등 공인도 해당 조항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그에 맞춰 허위 사실임을 적극적으로 소명하여 게시물의 삭제를 진행하려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또한, 명예훼손성 게시물 등은 기존 법리와 KISO 정책에 따라 본인의 신청을 통해 삭제 등을 처리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주요 사건이 나타날 때, 사업자가 자체적으로 해당 게시물을 모니터링해서 처리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수차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령과 KISO 정책에 따라 지속적으로 처리한 결과, 이제는 외부에서도 명예훼손성 게시물의 처리에 대한 처리 절차가 확립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관련한 외부 커뮤니케이션을 명확히 할 수 있는 점 역시 공동규제의 장점 중 하나다. 권리침해 주장자 혹은 게시자에게 다양한 사업자가 공동으로 준수하는 KISO 규정을 바탕으로 절차가 진행된다는 점을 설명하는 것이 외부 커뮤니케이션에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앞서 설명한 대로 필요한 경우 사업자는 언제든지 게시물 처리에 대한 심의를 통해 사업자의 처리 방향에 대해 KISO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일 것이다.

2) 주요 이슈에 대한 공동의 대처 유도

특히 게시물과 관련한 분야에서, 현재도 다양한 공적규제가 마련되고 있다. 최근에도 이른바 ‘엔(n)번방 방지법’ 등 다양한 이유로 게시물에 대한 공적규제가 마련되고 있는데, 이러한 법안 중 반드시 공적으로 처리될 필요가 있는 사안을 제외하더라도, 사업자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거나, 이미 자율적으로 처리하고 있는 영역에 대한 규제와 관련하여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업자 간에 원활한 소통을 통해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기존의 이익단체와 다르게 단순히 회원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구조가 아니라, 해당 규제가 해당 법이 의도하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효과 있는 규제인지, 법체계에는 부합하는지 등에 대해 외부 전문가와 함께 ‘정책위원회’를 통해 논의한 결과를 제공함으로서, 전문적인 의견을 규제 당국에 전달하고 있다.

또한, 반드시 법으로 규제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최근의 ‘혐오표현’ 등 사회에서 논의되는 이슈에 대해 KISO를 중심으로 사례를 다른 회원사와 공유하고 있다. 이를 통해 KISO 정책 등으로 논의하는 과정을 통해 단순히 한 사업자 내부에서 고민하는 것 보다 더 효과적인 자율규제 방안을 마련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3) 소결

소규모 사업자의 경우 특히 더 KISO회원 가입 이전에는 명확한 규정 혹은 절차 없이 운영자의 임의적 판단에 의해 처리되는 사안들이 간혹 있어 왔다. 물론 서비스의 특성에 따라 운영자가 책임을 지고 운영을 하는 것이 더 적절한 게시물 등의 관리 방법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는 이용자의 확대에 따라 이용자와 갈등을 빚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KISO의 회원사가 된 이후에는 KISO의 규정 등을 통해 명확히 게시물을 처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인정하고 이를 통해 처리하고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이용자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나. 환경의 변화

KISO가 처음 창립한 2008년에는 자율규제라는 단어 자체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시기였다. 또한 자율규제는 단순히 정부의 공적규제에 반대하고, 참여하는 기업의 이익을 따르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KISO는 회원사에 대한 자문, 검증 등의 역할을 수행하고, 기존의 협회와는 다른 공익적인 관점에서의 KISO 만의 목소리를 내면서 자율규제의 이해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정부 등 규제당국뿐만 아니라, 이용자의 인식 역시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율규제의 역량을 믿고 KISO에 적극적인 신고 및 의견을 제시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2019년 ‘가짜뉴스 신고센터’ 개소 이후, 2020년 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3천 건이 넘는 게시물이 KISO를 통해 유입되었고, KISO는 정책위원회에서 정한 규칙에 따라 해당 신고를 처리하였다.

4. 결론

2008년 설립된 이후 KISO의 주요 자율규제 역할과 이에 따른 회원사 및 환경의 변화를 간단히 살펴보았다. 공동 자율규제를 수행하는 KISO가 그간의 운영 과정에서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은 다음과 같다.

우선 자율규제를 수행하는 영역에서 특정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하여 기존의 이익단체와는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자율규제의 역사가 짧고 국가후견주의적 성향이 강한 한국에서 자율규제는 국가의 역할 방기 혹은 단순히 사업자가 공적 규제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인식이 있다. 이러한 인식을 단기간에 바꾸기는 어렵지만, 기존 KISO의 운영 경험으로 보아 전문적이고 실효성 있는 자율규약(Code of Conduct)을 지속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인식 개선에 도움이 된다. 이러한 자율규약을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영역를 망라하는 정책을 만드는 것보다는 전문성이 있는 특정한 분야에 자율규제를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자율규제에 대한 인식이 증가하여 자율규제를 정립되는 데 크게 기여한 경험이 있다.

자율규제가 공적규제를 비교하면 빠르고 유연하게 변화하는 상황에 적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실행을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는 단점도 있다. 자율규제의 강점을 강화하고,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것은 지속가능한 자율규제를 운영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는 적극적으로 사업자가 자율규제 논의에 참여함으로서 달성할 수 있다. 현업에서 필요한 자율규제 사항을 자율규제 기구에 제기할 수 있어야, 새로운 이슈에 대한 빠른 대응이 가능하고, 이러한 결과로 만들어진 자율규약은 사업자가 원하는 부분에 대한 전문적인 논의의 결과이기 때문에 사업자가 자율규제를 준수할 것이기 때문이다. KISO는 정책위원회 뿐만 아니라, UGC 협의체, 인물정보서비스자문위원회, 정책협의체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회원사의 의견과 현안을 교류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책을 마련해왔다. 외부 전문가와 회원사의 의견 교류와 치열한 토론은 현업에서 필요하고 또한 실천 가능한 자율규제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