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에서 언제나, 오늘은 인간이 생존을 위하여 투여해야하는 노동의 시간이 가장 최소화된 시기이다. 인간은 수천 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생존을 위해 투여해야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냥의 시간을 줄이기 위해, 채집의 시간을 줄이기 위해, 농경의 시간을 줄이기 위해 각종 도구를 개발하여 왔다.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근대에 들어 과학과 기술의 폭발적인 발전은 이러한 생존을 위해 필요한 노동시간을 비약적으로 줄여주었다. 생존을 위한 시간은 줄어들고, 여가 시간은 늘어나게 된다. 그리고 그 시간을 채우게 된 대표적인 것이 바로 ‘놀이’라 할 것이다. 대체적으로 놀이에 대하여 부정적인 시각이었던 고대철학자와 달리 근대에 들어서면서 칸트나 쉴러 등의 철학자들이 놀이에 대한 평가를 달리하기 시작한 것을 단지 우연이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세기 들어 문화사학자 하위징아(Huizinga)는 그의 저서 “호모 루덴스(Homo Ludens)”에서 놀이로부터 문화가 탄생하였고, 놀이가 문화 그 자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지금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에 인류의 생존을 위한 노동의 시간은 비약적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점을 누구나 예측하고 있다. 인류는 필연적으로 늘어난 여가시간을 여러 가지의 유희행위와 놀이로 채워나갈 것이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게임’이 될 것이다. 특히나 어려서부터 컴퓨터의 사용과 인터넷 연결이 가능한 온라인 환경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미래세대에게 디지털 게임은 분명히 가장 보편적인 놀이가 될 것이 확실하고, 그들의 생활과 당연하게 공존하는 유희문화일 것이다.

먼저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화 문제가 인류역사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어떤 나쁜 것이 갑자기 툭 튀어나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인류의 발전과 환경의 변화, 미래에 대한 예측을 고려할 때, 너무나도 당연하게 등장하고 보편적으로 작동할 소재에 대한 문화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가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에 대한 건전한 문화의 발전과 정착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인간이 어떠한 행위를 선택하는 데에 작동하는 요소로 ‘법’, ‘사회규범’, ‘시장원리’라는 세 가지 요소를 이야기한다. 로렌스 레식은 그의 저서 “코드(code)”에서 정보사회에서는 앞서 나열한 ‘법’, ‘사회규범’, ‘시장원리’ 외에 ‘코드’라는 요소가 매우 효과적인 행위규율요소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을 제시하였다. 필자가 4가지 행위규율요소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디지털 시대의 4가지 행위규율요소가 가장 잘 작동하는 영역이 바로 디지털 게임이라는 점에 있다.

우선 현대사회에서 법이 작동하지 않는 영역은 거의 없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법치주의를 중요한 이념으로 하는 사회에서 어찌 생각하면 당연한 것이다. 디지털 게임의 영역에 작동하는 법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법이 작동하는 정도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쨌든 법이 작동한다는 점에서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청소년보호법이나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등에서 게임이용에 있어서 연령의 제한을 가한다든지, 많은 논란이 있었던 강제셧다운제, 게임물 관련 사업자의 게임물 이용자에 대한 이용시간 및 주의사항 고지의무 등 규제가 존재하고 있으며, 게임산업 진흥을 위한 정책도 법을 기초로 작동하고 있다. 게임 컨텐츠에 대한 저작권적 법리나 게임 이용에 관한 계약법리가 작동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둘째, 디지털 게임에 시장원리가 작동한다고 하면 다소 어색하게 느낄 수도 있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이른바 ‘쾌락’을 느끼기 위하여 게임을 한다. 즉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게임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게임을 즐기기 위하여 일정한 비용과 시간을 소요한다. 만약 어떠한 게임으로 얻는 이익(쾌락)이 투여하는 비용과 시간보다 우월하지 못하다면 그 게임을 하지 않을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디지털 게임시장은 오히려 현대 사회에서 어떤 재화보다 가장 시장원리가 원론적으로 작동하는 완전경쟁시장에 가깝다는 것이다. 디지털 게임 시장에는 다양한 종류의 수많은 게임이 쏟아지고 있으며 이용자들은 본인의 취향에 따라 얼마든지 자신이 원하는 게임을 선택할 수 있다. 물론 네트워크 효과에 의하여 다소 시장실패의 경향을 보여주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재미가 없거나 지나치게 비용(현질)을 요구하는 게임은 이용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도태된다. 시장원리의 가장 기본 원리인 ‘주는 이익(쾌락)이 비용보다 클 때’ 그 재화(게임)는 시장에서 성공하며, 그 반대의 경우에 시장에서 소멸한다. 더군다나 게임시장의 수요는 매우 다양하고 변화가 빨라서 아무리 성공한 게임이라 하더라도 그 수명이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결론적으로 이만큼 시장원리가 원활하게 작동하는 다이나믹한 시장은 그리 많지 않다.

셋째, 윤리나 관습과 같은 법 이외의 사회규범은 디지털 게임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법과 법 이외의 사회규범을 구분 짓는 가장 기본적인 기준은 국가적 강제력이 작동하는가 여부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법에 대한 일탈행위의 제재수단은 법적 강제력이고, 사회규범에 대한 일탈행위의 제재수단은 사회적 비난이다. 그러니 디지털 게임에도 여러 방면에서 사회규범이 매우 다양하게 작동하고 있다. 간단한 예로, ‘공부를 해야 하는 학생이 게임을 하느라 공부를 게을리 하면 안 된다’는 윤리적 명제를 생각해보라. 우리나라의 어떤 학생도 이러한 윤리적 명제를 인식하지 못하는 학생은 없을 것이다. 디지털 게임과 관련하여 작동하는 사회규범은 위와 같이 매우 단순하고 직접적인 윤리 외에도 매우 다양한 방면에서 작동하고 있다. 특정 게임 내에서는 이용자들 사이에 불문율로 적용되는 사회규범을 손쉽게 발견할 수 있다. ‘gg’와 같이 게임의 패배를 인정하는 방법이나 게임 중간에 접속을 끊는 등 이른바 비매너 플레이에 대한 여러 사례가 있다. 이용자들에게 적용되는 사회규범뿐만 아니라 게임개발자나 제작자에게 적용되는 윤리도 있다. 물론 지금까지 일종의 직업윤리로써의 게임개발자나 제작자의 윤리가 강조되거나 활성화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사회규범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자발적으로 형성되는 것이어서 인위적으로 이를 만들거나 변화를 일으키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적 비난이라는 제재수단이 강력한 것이 아니어서 자율적 사회규범의 실효성은 항상 의심받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게임개발자와 이용자를 위한 윤리형성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며, 게임 이용과 관련된 교육과 캠페인이 있어왔으며,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자율적 규제노력 등 게임개발자의 자율규제 노력이 진행되고 있고, 이는 앞으로 더욱 진흥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할 것이다.

넷째, 디지털 게임에 작동하는 규범요소들 중 이 자리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요소가 바로 ‘코드’이다. 사실 사회 어느 영역이든 법, 사회규범, 시장원리가 작동하지 않는 영역은 없다. 반면에 코드가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영역은 디지털과 연결되어 있는 영역이며 그 중에서도 디지털 게임은 코드가 매우 강력하게 작동하는 영역이라는 점이다. 코드라는 개념을 제안하고 증명한 로렌스 레식의 경우 주로 저작권과 전자상거래의 예를 통하여 코드의 작동을 풀어내었지만 사실 코드가 작동하는 예를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은 디지털 게임이다. 모든 게임에는 룰이 존재하는데 디지털 게임에서 모든 룰은 코드로 구현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특정 게임의 아이템의 거래가 사회적 문제가 되어 아이템 거래를 금지해야 하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법적으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이템 거래를 금지하는 법률을 만들고 이에 대하여 형사적 벌칙을 규정하는 것이 전통적인 방식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사, 공판, 형집행이라는 형사절차가 수반되어야 한다. 사회규범적으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특정 게임의 아이템을 거래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좋지 않으니 아이템 거래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규범적 인식이 사람들 사이에 생겨나야 한다. 아이템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있다면 시장원리는 원론적으로 이를 제어할 수 없다. 그러나 코드를 통하여 아이템 거래를 금지하는 방법은 매우 쉽다. 프로그램 상에서 아이템을 다른 이용자에게 전달하는 기능을 없애버리면 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디지털 게임을 둘러싼 행위규율요소, 짧게 말하여 규범요소들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이를 통하여 강조하고 싶은 것은 디지털 게임이라는 영역이 4가지 규범요소가 매우 잘 작동하고 특히 다른 영역에 비하여 윤리와 코드가 법의 작용에 견줄 만큼 작동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점이다. 또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는 시대의 발전을 고려할 때 미래사회에서 디지털 게임은 인류가 가장 보편적이고 광범위하게 즐길 놀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먼저 ‘게임이용장애는 질병이다’라는 명제가 갖는 윤리적 평가의 문제이다. ‘게임이용장애는 질병이다’라는 명제는 사람들에게 필연적으로 게임이용장애에 대하여 윤리적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하게 한다. (사실 게임이용장애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이미 존재한다.) 또한 게임은 필연적으로 이용장애(중독)를 유발하는 대상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 물론 이에 대하여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코드에 넣는 것뿐이지 게임자체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기는 하지만 이는 사회적 영향을 무시한 일방적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수년전부터 주장되어 온 바와 같이 게임이용장애를 단지 질병코드에 넣는 것뿐이라고 하기 위해서는 질병코드에 들어갈 만큼 원인과 결과에 대한 논증이 보다 구체적이어야 할 것이다. 특히 게임이용장애에서 ‘게임’의 범주에 대하여 분명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이용장애유발물’이 무엇인지에 대한 구체적 논증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바둑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바둑은 분명 통상적으로 말하는 게임의 범주에 들어간다. 그런데 바둑은 오프라인으로 즐길 수도 있고, 온라인으로 즐길 수도 있다. 물론 현대사회에서 온라인 바둑 이용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만약 바둑으로 인한 게임이용장애 증상이 발생되었다고 하면 바둑이 문제인가? 온라인이 문제인가? 또는 게임이용장애인가? 인터넷 과의존인가? 질병코드 등록을 통하여 구체적이고 면밀한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이는 전후가 뒤바뀐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결국 과학적으로 논증된 구체적 개념이 아닌 포괄적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어디에서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는 게임이라는 것에 대한 윤리적 평가만이 남게 된다.

둘째, 많은 사람들이 이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화에서 핵심은 “‘게임’이 아니라 ‘이용’이다”라고 이야기한다. 발표자 또한 전폭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이미 수차례 설명한 바와 같이 미래사회에서 미래세대에게 디지털 게임은 윤리적 평가가 어찌되건 간에 필연적으로 향유할 놀이임에 틀림없다. 게임 시장은 활발하게 전개될 것이며 게임시장의 전체적인 규모도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WHO가 전지구적으로 게임의 과도한 이용에 대하여 경각심을 일으키고 건전한 게임이용문화를 자극하는 취지로 게임이용장애의 질병코드화를 추진하였다고 한다면 이는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정책방향과 국민의 일상생활에 ‘게임이용장애는 질병이다’라는 전제를 적용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특히 미래사회를 준비하고 문화를 형성하는 취지에서 더욱 그러하다.

우리는 모두가 우리의 미래세대가 게임이용에 있어서 건전한 문화를 형성하기를 바란다. 물론 이것은 우리 모두가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질병코드화’의 문제이다. ‘게임이용장애는 질병이다’라는 명제를 전제로 한다면 당연히 규범은 게임이용에 대하여 법을 중심으로 하여 규제적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다. 게임의 이용을 금지하거나 이용시간이나 이용방법을 규제하고, 세금 등을 통하여 게임 이용 비용을 증가시키며, 특정한 코드를 금지하는 등 규제의 규범이 중심적으로 논의될 수밖에 없다. ‘질병예방’이라는 목적을 위하여 게임이용자와 게임개발자들의 자발적이고 건전한 윤리의식의 형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것이 진정 우리가 추구하는 미래사회의 게임이용에 대한 바람직한 규범문화의 형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여기에서 한국정보화진흥원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인터넷 과의존에 대한 예방 정책의 변화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거 인터넷 중독 예방 교육은 인터넷 중독으로 인한 질환, 즉 VDT증후군, 거북목증후군, 잔영현상증후군 등 해로운 증상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키는 방향으로 교육을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부정적 증상에 대한 경각심을 중심으로 한 교육이 그다지 효과가 높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정보화진흥원은 인터넷 과의존 예방을 위한 정책방향을 미래사회에서 사람들이 인터넷을 스스로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디지털 시민역량을 증대하는 방향으로 전환하였다. 게임이용장애를 예방하는 정책, 미래사회에서 게임이용에 대한 건전한 문화의 형성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게임이용장애는 질병이다’라는 명제로부터 과감히 탈피하여 게임이용에 관한 조화로운 규범문화를 형성하는 방향으로 논의와 정책을 발전시켜나가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만 법뿐만 아니라 자율적인 게임개발자와 이용자의 윤리와 건전한 윤리를 반영하는 코드가 능동적으로 작동하는 규범조화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미래사회 게임이용에 관한 문제는 단지 ‘질병예방’의 문제로 풀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근대 시민사회의 형성을 위하여 문맹의 탈피와 근대적 시민성 교육이 필요했던 것처럼 미래사회의 시민들을 위한 디지털 시민성 배양의 문제로 풀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