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스포츠로 들어가며…
e스포츠가 국제적으로 커다란 관심을 받는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그럼에도 e스포츠가 스포츠의 틀에서 인식된다는 것은 흥미로운 이야기다. e스포츠가 비영리 영역에서 조금 더 논의되고 공공성 확보에 한 걸음 더 나아가 공적 영역에서도 그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면 e스포츠의 미래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빠르게 다가올 것이다.
전세계 콘텐츠 시장의 규모가 2003년 3800조원이 될 정도로 4차 산업혁명으로 촉발된 디지털 전환시대의 도래는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한국콘텐츠진흥원, 2022). 1998년 스타크래프트의 탄생과 더불어 시작된 ‘e스포츠 현상’은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운동과 연계될 정도로 그 영향력은 이제 제도권 입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e스포츠는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은 산업적 가치와 더불어 그동안 간과되었던 문화적 가치, 교육적 가치도 논의의 대상이다. 대한민국이 종주국인 e스포츠는 인류에게 물려줄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e스포츠가 스포츠와 접목되고 반대로 스포츠가 e스포츠와 접목된다는 것은 상호보완적 가치가 있고 상호 확장성을 갖는다.
역사는 스포츠가 놀이, 게임, 체육의 관점에서 담론을 형성하면서 디지털 전환시대의 시대적 대응을 예견하고 있다. 전통스포츠의 한계로 나타나는 여러 문제를 스포츠계뿐만이 아니라 국제사회는 인지하고 있으며 항저우 아시안게임은 이러한 관점에서 중요한 터닝 포인트로 국제사회에 e스포츠의 체육화를 앞당기는 계기가 되었다. 즉,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은 e스포츠에 많은 의미를 가져다주면서도 국제스포츠계에 새로이 해결해야 할 과제도 남기고 있다.
본 논고는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e스포츠의 국제적 위상과 주도권을 향한 기구들의 관계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e스포츠의 가치를 찾고 선점하는 자가 승자다.
2. 국제스포츠계에서 e스포츠의 발자취
e스포츠는 이제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서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가 그 시작을 알렸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e스포츠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조심스럽지만, 파격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e스포츠는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으며 각 국가는 후속 조치를 취하게 되고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2023 ‘올림픽e스포츠 시리즈’는 기존 스포츠계에 커다란 파장을 남겼다.
가. 아시아 무대에서 e스포츠 헤게모니
e스포츠가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면서 e스포츠는 국제스포츠계에 공식적으로 등장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최소한 아시아 지역에서 e스포츠는 한국과 중국이 그 중심에 있다. 아시안게임은 4년마다 OCA가 주관하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종합스포츠 대회이다. e스포츠가 이러한 국제대회에 공식종목으로 참가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OCA는 e스포츠가 아시안게임의 정식종목으로 채택되기 이전에 실내 무도 아시안게임에서 e스포츠를 시연한 바 있다. 실내 무도 아시안게임은 OCA에서 주최하는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스포츠대회이다.
2009년 베트남 하노이 실내 무도 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국내에서 2013년 개최된 제4회 인천 실내 무도 아시안게임에서 스타크래프트2, 리그오브레전드 등 e스포츠 6개 종목이 진행되었다. 이후 2017년 투르크메니스탄의 수도 아시가바트에서 개최된 제5회 실내 무도 아시안게임에서는 시범종목으로 채택되었으나 한국e스포츠협회는 OCA의 e스포츠 관련 부당한 운영과 진행 방식의 문제로 참여를 거부하였다(한국e스포츠협회, 2017). 당시 OCA는 e스포츠 대회는 2017 AIMAG 조직위원회, AESF와 공동으로 주최하며, 알리스포츠(Alisports)와 듀오스포츠그룹(Duo Sport Group)이 기술지원을 한다고 발표하였다. 2017 AIMAG 조직위원회는 실내 무도 아시안게임을 개최하기 위한 조직위원회이다. 즉, 당시 급조된 AESF를 내세우고 중국자본을 앞세운 알리스포츠와 같은 민간영역에서 e스포츠가 운영되었다. 중국의 자본력을 앞세운 행보였다. 이후 e스포츠는 2021년 태국 파타야에서 개최된 실내 무도 아시안게임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되기에 이른다.
아시아 지역에서 e스포츠는 종주국 한국과 자본력을 앞세운 중국의 위상에 변화가 생겼다. 선도국가를 향한 치열한 경쟁이다. 중국은 전세계 e스포츠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은 국가이고 시장규모는 5천9백억 원에 달한다(Statista, 2023). 중국 영향권의 각종 국제대회에서 e스포츠가 자리를 잡게 되고 한국e스포츠협회(KeSPA)나 국제e스포츠연맹(IESF)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홍콩에 본부를 둔 AESF의 발족은 e스포츠에 대한 중화권의 영향력을 잘 보여준다.
실내 무도 아시안게임에서 진행되는 e스포츠는 아시안게임을 위한 교두보의 역할을 하고 있다. 아시안게임에서는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최초로 e스포츠가 시범종목으로 채택되어 운영되었다. 이후 코로나로 1년 연기되어 2023년 9월 개최되는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e스포츠가 정식종목으로 선정되었다. OCA가 주최하는 종합스포츠대회인 실내무도경기대회에 이어 아시안게임에도 e스포츠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어 e스포츠가 궁극적으로 스포츠의 제도권으로 편입되었다.
진행상황을 살펴보면, 2020년 12월 OCA는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e스포츠의 정식종목화를 선언하였고 AESF는 8개 정식종목 및 2개 시범종목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2023년 3월에는 정식종목이었던 하스스톤을 제외하였다. 대회를 6개월 남은 시점에서 종목을 제외한다는 것은 연맹의 운영방식이 얼마나 불안정한지를 알 수 있다. e스포츠 종목을 살펴보면 정식종목인 리그오브레전드, 배틀그라운드모바일, 피파온라인4, 스트리트파이터5, 아레나 오브 발러(왕자영요), 도타2, 몽삼국2와 시범종목인 AESF 로봇 마스터즈, AESF VR 스포츠가 있다.
한국e스포츠협회는 4종목에 국가대표를 선발했다. 리그오브레전드,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스트리트파이터5와 피파온라인4에 국가대표가 출전한다. 그럼에도 총 9개 종목 중 5개 종목에는 출전하지 않는다는 것은 대회가 중국에서 개최되기 때문에 중화권 중심의 종목으로 채택하였고 대회에 참가하는 각 국가와 협의도 충분히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즉, 한국의 e스포츠 영향력이 아시아 무대에서 약화되고 있다는 위기감이다.
나. 올림픽과 e스포츠는 진보
최근에 IOC의 행보도 도드라지고 있다. 토마스 바흐 IOC위원장은 e스포츠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표명해왔다. 그럼에도 2018년 7월 IOC와 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GAISF)와 공동으로 개최된 e스포츠 포럼에서 “폭력이 사라지지 않는 한 올림픽에서에 e스포츠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단언하였다. IOC는 IOC e스포츠연결그룹(eSports Liaison Group)의 발족을 알렸고 ELS 의장인 프랑스 출신 데이비드 라파르티앙(David Lappartient)은 국제사이클연맹의 회장으로 IOC에서 e스포츠 업무를 주도하고 있다. e스포츠가 공식적으로 IOC에서 다루어진 것은 2021년 3월 제137회 IOC총회에서 승인된 ‘올림픽 어젠다 2020+5’에 가상스포츠와 e스포츠가 15개 권고 중 9번째로 포함되면서 시작됐다. 이후 2022년 11월 IOC는 세계 최초로 올림픽e스포츠 주간의 개최를 승인하였고 2022년 11월 2023올림픽e스포츠시리즈 9개 종목을 발표하였다. 그럼에도 2023년 5월 대회를 한 달여 남기고 포트나이트 사격 종목을 10번째 종목으로 급하게 추가하는 미숙함도 보여주었다.
2023년 6월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올림픽e스포츠 시리즈는 양궁(Tic Tac Bow), 야구(WBSC eBASEBALL™: POWER PROS), 체스(Chess.com), 사이클(Zwift), 댄스(JustDance), 모터스포츠(Gran Turismo), 요트(Virtual Regatta), 태권도(Virtual Taekwondo), 테니스(Tennis Clash), 사격(Shooting)이 공식종목으로 프로그램에 진행되었다.
여기서 아시안게임과 올림픽e스포츠 시리즈에서 다루어지는 e스포츠 종목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즉, IOC와 OCA 두 기관이 갖는 철학이나 정책방향이 다르다. OCA는 인기에 기반을 둔 전통e스포츠에 집중하여 시범종목으로 로봇이나 VR을 추가한 반면 IOC는 기존의 인기 종목이나 윤리적 위험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전통스포츠에 기반을 둔 종목을 채택했다는
점이다. 디지털 전환시대에 과학기술의 접목이 눈에 띈다. 또한 기존의 전통스포츠의 국제연맹(IFs)과 종목 개발사 협업으로 대회가 진행되었다. IP문제도 상대적으로 해소되었고 한발 더 나아가 공공성의 문제도 해결될 가능성을 열었다.
아쉬운 점은 이러한 e스포츠의 체육화 과정에 국내 KeSPA나 IESF의 역할이 크게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형식상으로는 AESF와 MOU를 체결하고 상호 협조를 논의하고 있으나 최소한 아시아에서 e스포츠의 헤게모니는 우리의 손을 벗어나고 있다.
2. 국제스포츠계에서 e스포츠의 발자취
국제연맹은 국제협력을 증진하기 위해 연맹 산하 국가별 협단체를 지원하고 국제수준에서 선수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초기에는 각국의 협회설립을 지원하고 회원국 확대를 목표로 활동한다. OCA는 IOC로부터 승인을 받아 아시아 대륙의 스포츠를 총괄하는 국제 아시아 스포츠조직이다. 아시아 지역 45개 국가를 회원국으로 두고 있으며 본부는 쿠웨이트에 있다. OCA는 e스포츠가 아시아 지역에 보급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각종 대회에 참가를 결정한다.
e스포츠를 보급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국제 수준의 조직이 매우 중요하다. e스포츠계에 국제연맹으로 국제e스포츠연맹(IESF), 국제장애인e스포츠연맹(IeSA), 아시아e스포츠연맹(AESF), 글로벌e스포츠연맹(GEF)이 있다. 대한민국은 26여년의 짧은 e스포츠 역사 위에 미래를 설계하는 종주국의 위치에 있다. 이러한 이유로 2008년 사단법인 국제e스포츠연맹을 설립하였고 2012년 사단법인 국제장애인e스포츠 연맹이 탄생했다. 이후 AESF가 2017년 발족하였고 2019년 GEF가 창단되었다.
항저우아시안게임을 주관하는 AESF는 e스포츠의 전문적인 거버넌스와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AESF는 OCA에게 승인받은 유일한 e스포츠 관련 단체이다. AESF의 본부는 홍콩에 있으며 회장은 홍콩 출신 케네스 폭(Kenneth K.K. FOK, JP)으로 다양한 직책의 스포츠 행정가로 유명하다. KeSPA가 2017년 실내 무도 아시안게임을 보이콧 할 정도로 초창기 AESF는 KeSPA나 IESF와 불편한 관계에 있었다. 그럼에도 e스포츠의 발전을 위해 IESF는 2020년 3월 AESF와 아시아 대륙에 e스포츠 보급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였다. IESF는 AESF를 아시아 대륙을 총괄하는 유일한 대륙 연맹으로 승인하고 AESF는 IESF를 세계를 총괄하는 유일한 e스포츠 국제연맹으로서 승인한다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국제연맹과
아시아연맹의 실질적인 협력관계는 지켜봐야 한다. 또한 KeSPA도 AESF와 2020년 12월 MOU를 체결했다.
아시아뿐만이 아니라 전세계를 대상으로 e스포츠를 총괄하고자 한다면 IOC와의 협력관계가 중요하다. 그럼에도 IESF나 GEF의 역할에 관해 IOC는 어느 쪽도 승인하지 않고 있다. 국제e스포츠 시장에서 정통성을 갖는 IESF와 자본의 힘과 스포츠외교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GEF는 각자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IOC는 2020년 국제스포츠계에 GEF에 가입하지 말 것을 경고한 바 있다. 텐센트의 지원을 받는 GEF는 2019년 설립하여 싱가포르에 본부를 두고 유럽올림픽평의회(EOC)와 협력할 정도로 적극적인 스포츠외교를 펼치고 있다. 중국에서 9월 개최되는 항저우 아시안게임과 지난 6월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올림픽e스포츠 시리즈’가 국제 스포츠무대에서 갖는 함축적 의미는 절대 가볍지 않다.
4. e스포츠의 미래는 가치창출
e스포츠가 제도권에서 자리를 잡을수록 국제관계는 위에 언급한 것 이상으로 복잡해질 것이다. 2020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e스포츠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OCA는 AESF를 아시아에서 유일한 e스포츠 관련 국제기구로 승인하였고 IOC는 ‘올림픽e스포츠 시리즈’를 승인하면서 e스포츠판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AESF는 홍콩에 ‘올림픽e스포츠 시리즈’는 싱가포르에 자리를 잡고 있다. 중국은 e스포츠산업의 최대 시장이다. 한국에 자리를 잡고 있는 IESF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된다. e스포츠의 가치가 증폭되는 시점에서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국제사회에 e스포츠의 저변확대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디지털 전환시대를 맞이하여 스포츠와 e스포츠의 만남은 자연스러우며 상호 확장성을 갖고 있다. 글로벌 e스포츠산업규모가 2조원에 육박하고 짧은 기간 동안 눈부신 발전을 거듭한 e스포츠는 MZ세대에게 강력한 소구력을 갖고 있으며 미래의 가치가 더욱 궁금한 인류의 문화유산이다.
본 논고를 마무리 하면서 몇 가지 제안하고자 한다.
우선, e스포츠가 스포츠로서 자리 잡기 위해서는 e스포츠의 확장성을 고민하여야 한다. 게임에 기반을 둔 전통e스포츠만으로는 e스포츠의 확장성을 담보할 수 없다. 국제 수준에서 전통스포츠와 적극적인 협력관계 구축 및 확장된 종목개발은 남은 숙제이다.
둘째, 디지털 전환시대에 과학기술은 e스포츠와 스포츠의 융합 가능성을 활짝 열어놓았다. IOC는 ‘올림픽 어젠다 2020+5’에 전통스포츠와 e스포츠의 융합을 제시하였다. AR, VR, XR 등을 접목한 적극적인 종목개발이 필요하다. 올림픽e스포츠 시리즈는 새로운 차원의 올림픽 운동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e스포츠의 가치 창출은 국제무대에서 주도권을 가질 때 강화될 것이다. AESF와 보다 적극적인 협력관계 구축이 필요하다. 아시아에서 영향력 감소는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다. KeSPA와 IESF는 AESF와 MOU를 넘어서는 실질적인 관계 정립 및 역할을 분명히 하고 협력관계를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 특히, 국제올림픽위원회의 역할에 대해 그 영향력을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국내에도 두 명의 IOC위원이 있으나 e스포츠와 관련 어떠한 구체적 실행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IOC나 국제스포츠 인사와의 교류 등 스포츠외교가 필요한 시기이다. 수동적인 대응 보다는 적극적인 대안을 마련하고 체육계와 밀도 있는 교류가 필요하다.
대한민국은 종주국의 위치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시시각각 변하는 스포츠계의 흐름과 e스포츠의 위상에 맞는 역할로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적극적인 지원, 국제수준의 외교력 및 조직의 강화는 필수이다.
참고문헌
송석록(2022). e스포츠의 스포츠화(체육종목화)에 따른 담론. 스포츠 현안과 진단 72호.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한국콘텐츠진흥원(2022). 2022 해외 콘텐츠시장 분석.
한국e스포츠협회(2017). 한국e스포츠협회, 2017 실내 무도 아시안게임 파행적 운영과 부적절한 종목선정에 대한 항의 공식입장 발표
Thomas Bach(2018). IOC: Esports has no Olympic future until ‘violence’ removed. https://nypost.com/2018/09/01/ioc-esports- has-no-olympic-future-untilviolence-removed/
Statista(2023). https://www.statista.com/outlook/amo/esports/chi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