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2022년 겨울, 모바일게임 이용자들의 최대 화두는 게임물관리위원회와 등급분류제였다. 게임물관리위원회가 ‘블루 아카이브’의 일부 메모리얼에서1) 관찰되는 선정성이 등급에 적합하지 않다는 민원을 받아들여 해당 요소를 수정하도록 요구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게임물 이용등급의 조정이 불가피함을 통보했기 때문이었다.2)

같은 시기 민원을 통해 등급 조정 가능성을 고지받은 모바일게임은 블루 아카이브뿐만이 아니었다. 소녀전선과 페이트 그랜드 오더 등 몇 개의 게임이 기존 등급과 추가된 콘텐츠의 기준 부적합성을 이유로 등급 상향을 판정받았다. 그리고 해당 게임의 이용자를 포함한 다수의 모바일게임 이용자들이 등급 상향 결정 이유와 함께 관련 자료가 담긴 회의록의 공개를 요청하였지만,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심의 회의록의 공개는 위원회의 의결을 거쳐야 가능하다는 이유로 거부하며 양측의 갈등은 심화되었다.

블루 아카이브가 촉발한 등급분류 제도에 대한 비판 여론은 거세져 갔다. 2022년 10월 7일에는 온라인, 패키지, 콘솔, 모바일 등 게임물에 대한 사전심의의무 폐지에 관한 청원이 5만 명의 동의를 얻어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부 요건을 충족하였으며,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논의를 기다리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2. 게임물 등급분류 제도의 역사

가. 초창기의 게임물 심의제도

국내의 게임물 등급분류 제도는 일부 권한을 민간에 양도하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국가주도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이와 같은 국내의 게임 등급분류 제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게임물 심의제도가 처음 시작된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에는 아케이드물의 허가를 담당한 한국컴퓨터게임산업중앙회와 그 외 모든 게임물을 심사하는 공연윤리위원회의 주관하에 게임물에 대한 사전검열이 이루어졌다. 전자오락 게임의 사회문화적 가치를 고려하여 자율심의와 사전검열의 절충안인 사전협의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제언이나 청소년의 정서 보호 및 건전한 가치관의 함양, 게임산업의 발전을
비교형량 할 수 있는 제삼자 기관이 품질관리의 형태로 평가해야 한다는 관점도 있었지만(한국문화정책개발원, 1996), 다른 문화콘텐츠에 대한 심의도 국가 주도하에 이루어지고 있었기에 특별히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1996년 10월, 영화의 사전심의제도를 명시한 「영화법」 제12조가 위헌으로 결정되면서3) 게임을 심의하던 공연윤리위원회가 자격을 박탈당하고 해체되었다. 공연윤리위원회의 자리를 대체하며 개편된 등급분류제도 및 등급보류제도를 담당하였던 한국공연예술진흥협의회 역시 1997년 「음반・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 제17조 제1항이 위헌으로 결정되며 사라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화관광부와 보건복지부, 정보통신부는 게임물 등급분류 제도를 정립하고 시행하는 주체가 되고자 각자의 제도를 제안하였다.

나. 게임물 등급분류 제도의 정착

각 부처의 다툼이 지속되던 가운데 게임물 등급분류 제도가 독립된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2006년 게임물등급위원회가 설치되면서부터였다.4) 게임물등급위원회는 2005년 6월 제출된 게임물 및 게임산업에 관한 법률안[의안번호 172116]에서 언급한 게임물 등급분류기관 지정제도에 의한 기구로, 심의 기준의 투명성, 객관성, 형평성, 예측 가능성을 담보하고 향후 자율규제로의 전환을 대비하고자 발족하였다. 게임물등급위원회는 게임물의 내용 정보를 이용자에게 제공함으로써 올바른 게임을 선택하도록 돕는다는 등급제 본연의 기능에 집중하기 위해 연령 등급을 재편하였고, 위헌 논란이 있었던 등급분류보류제도 대신 등급분류거부제도를 도입하였다.

게임물 등급분류 제도는 기본적으로 사전규제의 형태지만, 출시된 이후 콘텐츠가 추가되거나 변경되면 내용수정신고 제도를 이용하여 사후관리를 진행하도록 정하였다.5) 문화콘텐츠 검열기관이라는 비판을 불식시키기 위한 노력도 있었다. 2013년 12월 게임콘텐츠등급분류위원회(GCRB)를 민간등급분류기관으로 지정하고 같은 시기에 등급위원회에서 관리위원회로 기관의 명칭을 변경하였다. 사전심의보다 사후관리에 초점을 맞춘 형태로 국가 기관에 의한 문화콘텐츠 사전검열 기관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 것이다. 게임물관리위원회로 변경된 이후에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게임산업법)」 제21조의2를 신설하여 ‘자체등급분류제’를 도입하였으며, 오픈마켓 등급분류 제도나 등급분류 절차 간소화 등 게임물의 원활한 유통 및 이용 제공을 위한 개선점을 찾아왔다.

3. 게임물 등급분류 제도에 대한 비판

가. 제도의 복잡화

그러나 국내 게임물 등급분류 제도에는 여전히 비판의 여지가 남아 있다. 그중 하나는 제도의 복잡화이다. 게임물등급위원회는 사후관리 기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민간등급분류기관인 게임콘텐츠 등급분류위원회에 청소년이용불가 게임물을 제외한 PC, 콘솔 게임의 심의 권한을 부여하였다. 그리고 2016년에는 「게임산업법」 제21조의2 제1항에 의해 자체등급분류사업자를 지정하고 사업자 자체적으로 등급분류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다만, 게임콘텐츠등급분류위원회와 자체등급분류사업자는 청소년이용불가로 판정되는 게임물과 아케이드 게임물, 내용수정신고 사항 등을 자체적으로 판단할 권한이 없으며 정해진 시기 내 게임물관리위원회에 통보할 의무만이 있다. 만약 신청자가 게임물의 등급 예측에 실패하여 적절한 심사기관을 선택하지 못한다면 심사 이관에 따른 시간과 비용의 소요로 인한 어려움이 발생할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미심의
게임을 판매하는 스팀과 같은 사례까지 고려한다면 이는 국내 사업자에게만 부당한 역차별이 될 수 있다.

나. 이중규제

이처럼 민간과 산업 주체의 등급분류 위원회가 있지만, 기존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실질적인 권한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실질적으로는 복수의 기관이 등급심사에 관여하는 이중규제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특히 청소년이용불가 등급의 게임과 아케이드물에 관한 심사는 오직 게임물관리위원회만이 가진 권한이기에 신청자에게 규제의 비용을 이중으로 부담하게 하거나, 동일한 사안을 복수의 기관이 판단하게 함으로써 자원을 낭비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또한, 「게임산업법」 제21조 제6항의 내용수정신고 사항에서는 등급 변경을 요할 정도의 수정이 가해졌을 경우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직권으로 조사 및 등급 재분류가 가능함을 명시하고 있다. 블루 아카이브의 사례처럼 이미 등급분류가 완료된 게임물에 대한 민원이 제기될 경우, 게임물관리위원회가 개입하여 심사받은 등급을 재조정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다. 규제의 형평성

방송 콘텐츠에서는 이미 사후심의를 시행하고 있다는 부분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방송 사업자는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의 영상물에 대해 자율심의하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이에 대한 사후심의를 시행하고 있는데, 게임 영역에서는 청소년이용불가 등급의 게임물에 대한 민간과 산업의 자체 분류가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게임물에 비해 사회문화적 파급 효과가 작지 않은 정보통신물과 방송프로그램에서도 사후심의를 채택하고 있는데, 게임 콘텐츠만이 사전 등급분류를 고수하는 현 상황은 매체 간 규제의 형평성을 저해하는 결과라고 비판할 수 있다. 「헌법」 제11조 제1항 평등의 원칙과 동법 제37조 제2항 기본권 제한 과잉금지원칙을 위배한다고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다.

라. 기준에 대한 자의적 해석

이 외에는 실무적인 측면에서는 등급을 나누는 세부적인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비판이 있다. 2017년 7월, 게임물관리위원회는 ‘뉴 단간론파 V3- 모두의 살인 신학기’의 한국어판의 등급분류를 거부했다. 게임물관리위원회는 모방범죄에 대한 우려와 살인에 대한 문제의식의 부재가 사회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 경계를 넘었기 때문에 등급을 거부했다고 밝혔지만(김영훈, 2017. 11. 22.), 이용자들은 인천 동춘동 초등학생 유괴 살인사건 보도가 등급분류에 영향을 준 것으로 해석했다.6) 해당 작품과 유사한 학급재판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 ‘추방선거’는 심의를 통과했기 때문이었다.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기준으로 인적・물적 자원의 낭비를 줄이고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등급분류 제도의 지향점이 되어야 함에도 정무적 판단까지 등급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자못 아쉬운 부분이다.

4. 게임물 등급분류 제도에 대한 제언

국가가 모든 문화콘텐츠를 관리하고 검수하여 유통 여부를 결정하던 1990년대에 처음 시작된 국내의 게임물 등급분류 제도는 2000년 중반의 바다이야기 사건을 겪으면서 공적규제와 사전심의라는 형태를 유지해왔다. 게임산업이 급변하던 2010년 이후 국가의 사전심의 방식의 한계를 개선하기 위해 부분적인 수정과 개편을 거쳐왔지만, 여전히 남은 과제가 있다.

앞서 언급했던 제도의 복잡화, 이중규제, 규제의 형평성, 기준에 대한 자의적 해석 등은 국가 주도적인 공적규제로 인하여 생겨난 문제점이다. 블루 아카이브의 사례에서는 콘텐츠의 내용정보를 전달하여 적절한 선택을 돕는 가이드로서의 역할보다 부적절하다고 생각되는 콘텐츠를 수정하거나 통제하고자 하는 목적이 드러나기도 한다.

현재 게임산업의 지형에서 국가 주도의 규제가 적절하지 않은 근거로는 해외의 사례를 참고할 만 하다. 게임산업의 규모가 큰 미국, 유럽, 일본 등의 국가에서 ESRB, ISFE, CERO 등 민간 기업이 등급제도를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에 따라 주도적인 등급분류가 시행되는 중국이나 대만의 사례도 있지만, 많은 게임 강국에서는 공적규제의 한계를 인지하고 자율규제를 채택하고 있다.

2023년 1월 17일, 게임물관리위원회는 블루 아카이브 등의 등급 재분류 사태와 관련하여 이용자 열일곱 명과 함께 약 5시간 동안 간담회를 진행하였다. 간담회에서는 이용자 단체 출범의 필요성, 분기별 소통의 장 마련,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전문성 향상, 직권등급재분류 과정의 재편, 위원회 회의록 공개 등이 논의되었다(김주환, 2023. 1. 17.).

그러나 국가 주도적 사전심의가 가능한 이상 언제든 제2의 블루 아카이브가 나타날 수 있기에 국내 게임물 등급분류 제도는 변화해야 한다. 등급분류의 목적을 올바른 내용정보의 전달로 명확히 정하여 기준을 세우고, 산업의 경쟁력과 더불어 이용자의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이용자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 많은 것이 변화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