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OK: 평론가님께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게임 그리고 현재까지 즐겨 하시는 게임이 있으시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경혁 칼럼니스트: 저한테 있어 가장 기억에 남는 게임이라고 하면 ‘울티마5’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소 고전적인 게임인데, 그 게임이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이유가 있어요. 그 이유 중 하나가 세뱃돈을 모아 처음으로 돈을 주고 산 게임이에요. 과거에는 불법 복제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돈 주고 게임을 살 수가 없었어요. 이후 정품이라는 게 나오게 되었고, 우리도 게임을 돈 주고 사야 되지 않겠냐 하는 바람이 불 때 세뱃돈을 모아서 산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당시 정품 게임 가격이 1만 5천원이었는데, 초등학생의 일반 용돈으로는 살 수 없는 금액이었어요.

아직도 오랫동안 기억이 남는 이유가 처음으로 돈을 주고 게임을 샀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한 가지 이유는 ‘울티마5’ 게임을 통해서 영어를 배웠다는 것입니다. 당시 게임이 영어로밖에 안 나오는데 게임은 해야 하고 하니 영문사전을 찾아보며 게임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게임은 일반 영어가 아닌 고어를 써서 우리나라로 비유한다면 사극 말투 같은 거죠. 그게 문제이긴 했는데….

아무튼, 또 다른 결정적인 이유는, 그 게임이 그리는 세계관 때문입니다. 게임 내 스토리에는 진실, 사랑, 용기라는 3대 원리가 있고, 3가지 원리의 조합으로 8개의 미덕이 등장합니다. 이러한 요소들로 인해 어렸을 적 재밌게 플레이한 기억이 크다 보니, 지금까지도 그 여운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GSOK: 현재까지 즐겨 하시는 게임이 있으신가요?

이경혁 칼럼니스트: 아마 게임 시간으로 치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가장 많이 했을 겁니다. 근데 지금은 이전만큼 시간이 있는 게 아니다 보니 많이는 하지 못하죠. 웃긴 게 직업이 게임 평론가인데 게임 할 시간이 없어요. 왜냐하면, 하루에 신작이 몇백 건씩 나오잖아요. 그러다 보니 모든 게임을 다 하지는 못합니다.

첫 직장을 그만두고 다음 날 아침 메신저를 열었는데, 그 밑에 광고 배너가 이렇게 조그맣게 뜬 거예요. 광고에 “모험을 떠나 본 지가 언제였는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이렇게 쓰여 있어서 호기심에 클릭했고, 정신을 차려 보니 100일이 지나고 집에 쌀이 떨어져 있었어요. 그래서 다시 정신을 차렸습니다.(웃음) 그때 당시에는 게임에 과몰입해서 살았던 것 같아요. 근데 그러다 보니 ‘서버 최초’ 이런 업적도 몇 개 가지고 했죠.

사실 게임 평론가라는 직업은 ‘서버 최초’ 이런 타이틀이 없으면 안 돼요. 학교 강의를 나가게 되면, 학생들이 처음에는 공부나 한 놈이 뭐 알겠어? 라며 경계를 하는데, 이런 걸 언급해주고 하면 또 눈빛이 달라지죠.

지금 하고 있는 게임이라면 말씀드린 대로 신작이 하루에도 몇백 건씩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그래도 이런저런 게임들을 한 번씩 해보려고 노력하기는 합니다. 최근에는 랜덤다이스라는 게임을 조금씩 매일 플레이 해보고 있습니다.

근데 확실히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젊었을 때의 그 동체 시력과 다르고 노안이 왔더라고요. 저도 몰랐는데 스마트폰 게임을 하다가 놀란 게 이렇게 안경이 없으니까 잘 보이는 거예요. 올 게 왔구나 라는 생각도 들고, 게임 다루는 사람의 눈이 이렇게 됐으니 이제 신체적 능력을 요구하는 게임은 쉽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GSOK: 평론가님께서 하신 말씀을 들어보니 주로 RPG 종류를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의 세대(80년대생) 인생 게임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빠지지 않은 게임이 ‘스타크래프트’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입니다. 게임은 혼자 즐길 수도 있지만, 여럿이 즐기는 게임이 있다는 것이 그 특징인 것 같습니다.

과거에 오락실, 혹은 콘솔 등을 통해 오프라인에서 즐기던 게임이 기술의 발전으로 온라인화되고, 이에 따라 불특정 다수와 즐기는 게임으로 발전해온 것 같습니다. 반면 이러한 익명성에 반대되어, MMORPG의 길드 개념, 더 나아가 최근에 ‘Among us’, ‘It takes two’처럼 내가 아는 누군가와 하는 게임이 다시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익명성을 강화하는 게임과, 익명성을 줄이려는 게임이 앞으로 게임에 어떻게 반영될지에 대한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이경혁 칼럼니스트: 게임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참 재밌는 게 최초의 게임으로 불리는 것들은 전부 2인용이었습니다. 사람이 놀기 위해서는 맞상대가 필요하잖아요. 근데 이를 사람이 상대해 주면 프로그래밍은 따로 할 필요가 없고, 그냥 좌우 이동 동작 정도만 해주면 돼요. 그런데 싱글 플레이 게임을 개발하려면 사람을 놀아줄 스크립트가 필요한 거예요. 그러니까 오히려 개발이 더 어려운 거죠. 그래서 최초의 게임은 전부 2인용으로 나왔어요.

이후 1980년~1990년대가 되면서 혼자 놀 수 있는 형태의 게임이 많아지기 시작했죠. 동전 하나로 둘이 노느니 기계 한 대당 한 사람씩 앉히면 훨씬 더 매출회전이 빠르니까, 그러한 시장적인 목적에서 1인용 게임이 점차 개발되었습니다.

그리고 2000년대에 온라인 시대가 되면서 굳이 놀아줄 상대를 만들기보다 실제로는 알지 못하는 사람들끼리 원거리에서도 플레이할 수 있게 되었죠. 게임의 규칙만으로도 충분히 주먹의 대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발견되면서 비슷한 실력끼리 매칭시키게 됐고, 사람들은 여기에 재미를 느끼면서 온라인 게임이 활성화된 거죠. 이후 익명을 기반으로 한 오늘날의 멀티플레이 게임이 형성되게 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질문 주셨던 ‘Among us’, ‘It takes two’ 같은 경우에는, 저는 일종의 노스탤지어라고 생각을 해요. 우리가 온라인 시대에 들어서 멀티플레이를 통해 나랑 비슷한 수준의 상대를 만나니까 재미있긴 하죠. 그런데 게임이 그것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익명이기도 하고 인스턴트한 팀으로 구성되다 보니, 게임 내 욕설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죠. ‘League of Legends’는 5대5가 아니라, 1대9 잖아요, 그냥 “내가 잘났다”를 하기 위한 게임이 돼버리다 보니까 이전에 팀 케미스트리로 즐겼던 그런 재미는 사라지게 된 거예요. 사람들이 재미만 생각해서 게임을 하는 게 아니라, 게임 내에서 여러 욕설, 비방 등 온갖 비윤리적인 생기다 보니, 문제가 된 것이고, 이에 지친 사람들이 다른 방식의 게임 플레이를 원하게 되고, 신선한 플레이 방식을 찾으려는 노력이 생기게 된 거죠. 예를 들어 배틀그라운드도 저는 비슷한 개념이었던게 배틀그라운드 이전의 게임들은 전부 팀 플레이잖아요. 모르는 사람과 팀을 짜면 계속 스트레스를 받는 거예요. 그런데 배틀그라운드가 성공했던 이유 중 하나는 배틀그라운드는 팀이 없어요, 기본적으로 팀이 있으면 이게 메카닉에 영향을 주는 게 뭐냐면 ‘오버워치’,‘스타크래프트’,‘League of Legends’든 다 보면 결국은 목표 승률이 50%예요. 승 아니면 패예요. 이 게임의 결과는 그리고 매칭 자체를 그렇게 시키죠. 기대 승률을 50%로 그래야 모든 사람들이 흥미를 잃지 않으면서도 공정하다고 느끼며 경쟁을 하니까, 그런데 ‘배틀그라운드’ 그걸 깼거든요. 그러니까 100명이 한 번에 뛰잖아요. 그러면 이 게임의 기대 승률은 1%예요. 그러니까 저도 애초에 기대를 안 하는 거죠. 승률이 50%면 지면 막 열받는 거예요. 3연패만 해도 ‘League of Legends’은 애들이 막 욕하고 난리잖아요. 근데 ‘배틀그라운드’ 몇 번 졌다고 1등을 못 했다고 화를 내지 않습니다. 게임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그 지점이에요. 기대 심리를 아예 낮춰버리면서 스트레스 받을 일을 없애버린 거죠.

‘Among us’, ‘It takes two’ 모두 옛날에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같이 플레이했던 그 재미를 다시 꺼내온 거잖아요. 그래서 항상 그런 것 같아요. 어떠한 게임이 나왔을 때 거기서 충족될 수 있는 즐거움이 있고, 부족한 지점이 있는데 이를 서로 메꿔주면서 발전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It takes two’ 같은 게임은 시장 지배적인 콘텐츠는 못 될 것 같아요. 제작비가 너무 비싸기도 하고 제작비에 비해 그런 온라인 멀티플레이에서 뽑아낼 수 있는 수익만큼은 못 뽑아내죠. 하지만 거기에 대한 니즈는 있다 보니 두 개념이 각각의 장르로 발전해 나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GSOK: 계속 말씀을 주시면서 게임에 대해서 제일 중요한 게 ‘재미’라는 부분을 강조하고 계시잖아요. GSOK도 공감합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모든 문화 콘텐츠를 즐기는 이유 중에 대부분이 재미랑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임이 다른 콘텐츠와 다른 특징이 있다면 어떤 것으로 생각하시는지요?

이경혁 칼럼니스트: 사실 콘텐츠에서 재미를 빼면 아무것도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없죠. 저는 사람들이 뉴스는 재미없지 않냐 하는데, 뉴스도 재밌어서 보는 겁니다. 재미는 모든 대중문화 콘텐츠가 다 가지고 있는 요소인 거죠.

저는 게임이 다른 콘텐츠와 다른 특성 중 하나는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를 예를 들자면 영화나 소설은 카메라나 혹은 다른 시점이라고 부르는 특정 포인트가 있죠. 그것이 1인칭이 되든 3인칭이 되든 외부입니다. 소설도 누군가가 쓴 것을 따라가게 되는 것이고, 영화의 경우에는 카메라가 반드시 피사체를 화면에 비추면서 시점이 명확하게 존재를 하죠.

그런데 게임 같은 경우에는 시점이 1인칭이든 3인칭이든 그 중심은 ‘나’인 거예요. 물론 허구이기는 하지만, 기존의 콘텐츠들이 밖에서 어떠한 서사 혹은 대상을 묘사해 주는 거를 보며 재미를 느꼈다고 한다면, 게임은 “이건 내가 경험한 거야!”라고 말할 수 있다는 거죠.

GSOK: 직접 경험한다는 측면에 대한 말씀이 정말 공감이 가는데요, 게임을 보는 관점 중에서 존 카맥 같은 분은 “스토리가 뭐가 중요해 그래픽이 완벽한 게 중요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또 반대로 게임 스토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두 가지 상반되는 관점이 있는 거 같은데 어느 쪽이 게임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이경혁 칼럼니스트: 말씀 주신 질문에 대한 논쟁이 1990년대와 2000년대에 한참 이슈였어요. 그래서 처음에 게임을 어떻게 볼 것인가? 라는 인문사회적 분야에서 접근할 때 처음 시작된 곳이 영문학 분야였습니다.

이를 서사 매체의 가능성이라고 해서 문학 작품을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등의 논의가 시작된 것이 1990년대 중후반이고, 그다음 에스피로스같은 사람이 그렇게 얘기하니까 이게 마치 문학의 식민지로 전락할 수 있지 않으냐 오히려 여기서 나올 수 있는 가능성들은 그 놀이 그 자체 디지털로 놀이를 구현하는 건데 그 놀이의 의미를 안 보고 서사로만 보면 게임의 가능성이 더 제한된다고 해서 이 논쟁이 굉장히 뜨거웠는데, 결국 결론은 안 났어요. 게임이 두 갈래로 동시에 발전했거든요.

예를 들어 ‘테트리스’를 할 때, 그 게임에서 우리가 스토리를 바라지는 않잖아요. 한편으로는 ‘레드 데드 리뎀션’ 같은 게임은 스토리를 빼면 이야기할 수가 없어요. 이러한 두 가지 특징이 같이 있는 거고, 어떻게 보면 사람들이 지금 이야기하는 무엇이 중요한가 하는 것은 굉장히 원론적인 말 그대로 실제 현실에서는 100% 이것이라고 얘기할 건 저는 별로 없다고 봅니다.

둘이 항상 섞이는데 말 그대로 원론의 단계에서만 이제 두 개의 축이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 하는 거지, 우열을 가리기는 어렵죠. 게임이 여러 가지 형태로 나오게 되고, 이런 상황에서 어떤 것이 우위에 있다고 이야기하기는 참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냥 기원들이 이렇게 있고 그 기원들이 다른 매체와도 심지어 크로스가 되면서 굉장히 복잡하고 다양하게 현상들을 만들어 내는 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얘기의 전부가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GSOK: 요즘 직접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고 자동모드로 플레이하면 저는 “무슨 재미로 게임을 하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게임을 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평론가님께서는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이경혁 칼럼니스트: 그 이유를 찾는 것에 대해서는 저도 학교에서 관련 연구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왜 게임을 하는가에 대해서는 한 100년 뒤에도 누군가 고민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다만, 그 이유는 계속 달라질 겁니다. 한국 사회에서 인구가 제일 많은 세대인 40~50대가 점점 나이가 들고 있습니다. 현재 40~50대분들이 어렸을 적에 전자오락실에서 게임을 했던 세대이고, 지금은 50대 이제 60대를 향해 가고 있단 말입니다.

온라인 게임이 오락실 게임 때와 가장 큰 차이점은 ‘축적’입니다. 오락실 게임에는 서버가 없으니 기계를 끄거나 게임이 끝나면 모든 데이터는 사라졌었는데, 온라인 게임은 내가 기계를 끄건 말건 서버에 나의 기록이 다 남아 있고 내 자산이 축적된 듯한 기분을 들게 하는 거죠. 그러한 기록들이 축적되며 레벨업을 하고, 또 게임 내에서 내가 들어가지 못했던 새로운 사냥터에 들어갈 수 있게 되고, 가상이면서도 나에게는 축적으로 남는 겁니다.

“온라인 시대에 들어와서 게임 경험이 서버에 축적된다”는 표현을 제가 자주 쓰는데, 이제는 내 숙련도가 아닙니다. 잘 생각해 보면 옛날 오락실에서 게임을 많이 하다 보면 그 작동법이 손에 익혀지게 됩니다. 그건 나의 실력이 증가하는 즉 내가 ‘레벨업’ 한 것이 되죠.

요즘 모바일·온라인 게임들은 사람의 숙련도를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 제한됩니다. 그러면서 남는 건 캐릭터의 레벨, 캐릭터의 장비가 되는거죠. 그러다보니 무엇인가를 하는 것 자체는 자동 사냥으로 넘겨도 게임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 플레이어의 몸에 쌓이던 숙련도가 서버에 쌓이게 되니, 한편으로는 숙련도를 빼앗겼다고 표현할 수 있겠네요.

GSOK: 온라인 게임은 그 특성상 지속적인 패치로 이용자에게 새로운 콘텐츠를 제공해야 하고, 이에 따라 밸런스 조절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밸런스 패치가 기존 이용자의 권익을 해하는 결과가 나타날 때, 이용자들은 분노하기도 합니다. 일부는 이렇게 패치가 있다는 것이 e스포츠가 스포츠로 전격 편입되기 어려운 이유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혹시 밸런스 패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경혁 칼럼니스트: 이게 두 가지 맥락을 각각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스포츠의 측면으로는 저는 어느 정도 납득합니다. 그러니까 두 가지가 같이 있는데 야구라고 해서 룰이 바뀌지 않을까요? 처음에는 볼도 없었어요. 올해도 KBO를 보면 스트라이크존을 늘리냐 마느냐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현재 레거시 스포츠라고 해서 아예 패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라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e스포츠가 한편으로는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된다고 생각하는 건 기업이 혼자 룰을 바꿀 수 있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야구 같은 경우에는 물론 KBO가 스트라이크존을 조정하는 이유도 결국은 흥행이 문제잖아요. 하지만, 스트라이크존을 조정할 때 e스포츠와 다르게 더 많은 이익단체가 개입을 해요. 10개 구단, 관련 스포츠 용품사들 등 서로 다른 역학 관계들이 충돌하는 부분이 있고, 이들이 협의와 조율의 과정을 통해 조정하지만, 게임은 그거보다는 독점적이죠.

게임 패치에 대한 권한을 한 기업이 너무 쉽게 흔들 수 있습니다. 이 부분 때문에 유저들이 반발한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사회에서 흥행이라는 걸 빼놓고 생각할 수는 없고, 밸런스 패치의 e스포츠적 측면에서도 지적할 수 있는 문제는 있지만, 그게 게임과 e스포츠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실은 스포츠 전반에 현재 자본주의 대중문화의 스포츠에서 되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문제인데, 그걸 이제 게임만 가지고 뭐라고 하는 건 좀 웃기지 않느냐라는 입장이죠.

순수한 게이머의 입장에서도 비슷한 맥락인 거예요. 게임 내에 가상세계에서 하나의 규약이 필요한데 그 규약을 특정 기업이 다 쥐고 있는 거죠. 그건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본인들이 만들었으니까. 그건 알겠는데, 게임 안에 사회라는 거는 결국 그 안에서 100% 가상의 윤리만이 지배받지는 않아요. 그리고 그 합의라는 건 시장질서 하에서 많이 이루어지죠. 그러니까 특정 게임의 패치가 매우 말도 안 되게 나왔다면 유저들이 반발을 하죠. 특히 작년부터는 유저들의 힘이 어마어마해졌습니다.

GSOK: 게임사와 이용자 간의 어떤 정치적인 문제에 대한 부분인 것 같은데, 그러면 이 정치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 게 가장 올바른 방식의 해결일까에 대한 부분도 사실 되게 입장이 많이 다릅니다. 그래서 모 대선후보는 일정 규모 이상의 게임사에 이용자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공약하기도 했죠. 다양한 차원에서 얘기가 나오는 것 같은데 어떤 방식의 해결책이 가장 적절하다고 보시는지 좀 궁금합니다.

이경혁 칼럼니스트: 정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두 흐름 모두 이게 완벽한 해법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저 같은 입장에서는 결국 문제의 원인은 담론의 부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이용자의 목소리 자체가 저는 담론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조금 더 차분히 가라앉혀서 실제 이 문제가 어디서부터 근원하는 것인지를 여러 사람이 공론화하고 침착하게 다룰 수 있는 장이 필요한데, 그런 게 없으니까 전부 뜨거운 거죠.

근데 이게 왜 그런가 생각을 해보면 레거시 미디어 그 다음에 웹진 커뮤니티 다 포함해서 이걸 담론화하려는 흐름이 너무 없는 거예요. 조금 더 차분하고 진지하게 논의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근데 막상 그 담론화 할 수 있는 공간이 너무 없습니다. 이용자를 대표할 수 있는 담론이 없다는 이야기이거든요. 이용자 대표가 이야기한다고 해도 게이머들의 반발이 없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이 부분이 제일 안타깝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산업적인 이야기이기는 하겠지만, 이용자의 의견이 모일 수 있는 담론의 공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게 되면 정답은 아니겠지만 지금보다는 더 현실적인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기초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GSOK: 저도 이용자 담론의 부재라는 게 정말 공감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 주셨던 것처럼 이러한 담론의 공간 내지는 전문가도 없습니다. 작년 이른바 ‘트럭시위’ 관련하여, ‘총대’로 표현되는 분에 대해서도 모두 찬성하는 게 아니라 게임 내에서 그 사람이 과연 정당한 대표자인지에 대해 계속 다투는 경우를 봐 왔습니다. 그 근본적인 원인은 게임을 다양한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 있었습니다. 순수히 즐기는 사람과, 일종에 돈을 벌기 위한 이른바 ‘쌀먹’을 위한 이용자가 입장이 달라서 발생하는 경우가 다수였는데요. 이 부분에 대해 어떤 의견이신지요?

이경혁 칼럼니스트: 쌀먹이라는 게…. 사실 제가 이 비슷한 주제로 논문을 썼거든요. 한국에서 쌀먹은 이제 디아블로를 많이 기원으로 두죠. “게임 아이템을 팔아서 쌀을 사 먹는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게 비난의 대상이냐라고 하면 아이템베이와 아이템매니아의 거래액을 본다면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깜짝 놀랐어요. 게임 내에서도 시세가 있고 판매자와 구매자가 있고 농장화가 됐죠.

제일 핵심에는 뭐가 있냐면 가상의 공간에서 이것이 실물 가치는 아니었잖아요. 그 게임 속의 아이템이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게 현금이라는 걸로 교환 가능한 가치가 되는 순간인 거죠. 이게 흔히 이야기하는 가상과 현실의 중첩이라는 거잖아요. 그런데 여기에 한 층이 더 있습니다. 그러니까 쌀 먹 논쟁이 뭐냐고 하면, 가상과 현실의 중첩인데 가상의 짝을 이루는 단어는 놀이였고, 현실의 짝을 잇는 단어는 노동이었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 가상 공간의 아이템이라는 건 놀이의 결과물이었어요.

그런데 가상 현실이 중첩되니까 이 놀이의 결과물이 현금 가치로 치환될 수 있으니, 가상 현실 중첩뿐만 아니라 놀이와 노동의 중첩이 같이 나온 거죠. 그러니까 쌀먹이라는 얘기가 거기서 나오는 거예요. 이게 놀이냐 노동이냐를 구별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겁니다. 그래서 저는 사실 가치 평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쌀먹이 옳으냐 그르냐는 저는 명확하게 답변은 못 할 것 같은데, 적어도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싸움 혼돈에는 가상 현실의 문제가 아니라 놀이 노동의 중첩이 되게 근본적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GSOK: NFT나 P2E 이런 얘기가 계속 나오는 이유가 결국은 말씀 주셨던 것처럼 좀 쌀먹 이슈, 아이템 거래 이슈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에 대한 부분을 좀 관통하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에 대한 의견이 많이 다르잖아요. P2E는 게임의 사행성화가 너무 강해서 안 된다고 주장하시는 분들도 있고, 반대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이야기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경혁 칼럼니스트: 이 부분에 대한 입장은 매우 명확한데, 조금 유하게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요즘 나오는 메타버스, NFT, P2E를 다 같은 맥락으로 본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 있는 키워드들을 좀 짚어봐야 하는 건 부분유료라는 개념이죠. 조금 전 말씀 드렸던 놀이-노동, 가상-현실의 중첩에서 결정적인 역할은 부분유료 결제라고 생각합니다. 내 몸에 쌓이는 숙련도를 돈으로 대체할 방법으로서 부분유료는 누군가에게는 매우 기분나쁜 것으로, 어떤 사람들에겐 없는 나의 시간을 대체할 수 있는 좋은 수단으로 동시에 받아들이면서 만들어져 왔고,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게임의 상당수는 부분유료를 기본 모델로 하고 있단 말이죠.

이게 중요한 이야기인 게 일부 게이머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게임사가 독단적으로 만든 모델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용자의 니즈가 있으니까 시장이 세팅된 것이거든요.

그런데 부분유료 결제를 얘기하는 것과 P2E는 조금 또 다른 맥락이라고 봅니다. 부분유료 모델도 앞단에 하나 더 있어요. 왜냐하면, 최초의 노가다 자동 플레이라는 건 게임사가 만들지 않았습니다. 이용자가 만들었죠. 제일 먼저 오락실 버튼에 동전을 꽂았죠. 사냥 공격 버튼에 동전을 하나 꽂으면 (버튼이)계속 눌리잖아요. 그런데 동전 꽂기도 그렇고 키보드 고장 날 것 같고 더 좋은 방법이 없을까 하다가 누가 ‘오토 마우스’라는 걸 만들죠. USB 프로그램인데 꽂으면 알아서 막 사냥을 합니다. 게임이 지루한 순간들이 있어요. 물론 특히 온라인 시대 아까 얘기한 대로 게임의 결과물이 축적되고 나의 숙련도로 들어오는 상황은 조금만 레벨 밸런싱이 안 맞아도 이게 노가다라는 표현이 됩니다.

여기까지가 지금 오늘날 우리가 얘기하는 부분유료의 관점이라면 P2E는 뭐가 하나 더 붙느냐 저는 이거는 아까도 얘기했지만 가상 현실 그 다음에 노동 사이를 중첩시키는 중요한 부분은 선언이라고 봅니다. 왜 선언이라고 생각하느냐, P2E는 Play와 Earn이잖아요. 이 둘은 사실은 상호 배타적인 개념입니다. 우리는 노동을 뭐라고 정의를 하냐면 생산하는 행위라고 놀이는 생산하지 않는 행위였어요.

이거는 가상화폐 거래 시스템에다가 갬블링을 붙여서 게임의 외피를 씌운 거죠. P2E에서 Play가 아니라 Earn이 좀 더 크다고 봅니다. 그리고 실제 이 게임을 다루는 매체들의 목소리도 전부 이 게임의 플레이 영역은 아무도 이야기를 안 해요. 본질이 플레이에 없다는 거죠. 그래서 선언이라고 제가 말씀을 드리는 게 가상화폐 혹은 소위 말이 체인 기반 화폐들에 대한 투기 투자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있고 거기에 자꾸 플레이라는 외피를 씌우고 있다는 거예요. 물론 재미는 있죠. 코인도 재미있어서 하죠. 근데 그 재미를 우리가 일반적인 게임의 재미와 등치를 시키면 게임이 갬블링이 되는 거예요. 갬블링과 게임의 가장 큰 차이는 어디에 있냐면 결국 우리나라 제도상에서는 사행성이잖아요. 그리고 그 사행성에는 한국 법제 하에서는 현금으로의 환금 가능성이 포함된단 말이에요. 그렇다면 지금 P2E 게임으로 거론된다는 것들은 정확히 저는 플레이가 매우 부수적인 콘텐츠라고 생각을 합니다.

사실 아까 얘기했던 이 부분유료 그 다음에 확률형 아이템 그 다음에 P2E까지의 흐름이 있잖아요. 이 흐름이 저는 각각 다르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P2E의 단계에 오면 부분유료랑은 또 다른 개념이에요. 부분유료는 사람들이 노가다라고 부르는 어떤 것의 거래를 인하우스로 가져온 개념이었다면, P2E는 탈중앙적 블록체인 기술을(코인 자산) 바탕으로 가상에 있는 무언가를 진짜 자산이라고 얘기를 해버립니다. 그 차이가 되게 크죠.

그전에는 환금 가능한 무엇이었고 환금도 저는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는 않아요. 저도 이제 어쨌든 출신이 오리지널 게이머 쪽이다 보니 이 기분 나쁜데 입장은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그들의 게임이 의미가 없다는 건 아닌데 P2E에 가면 그거는 이제 게임이라고 부를 수 없는 어떤 영역이죠. 중심이 Play가 아닌 거든요. 다만 그 가치를 게임 안에서 갖고 싶은 누군가가 현금의 가격을 부르니까 시장이 형성된 건데 P2E로 거론되는 것들을 보면 그것도 없는 거예요. 게임 안에서 얘가 능력이 좋은 건 전혀 문제가 안 되는데 중요한 건 뭐냐, 다음 사람에게 얼마에 이걸 파느냐 그러면 이때부터는 그냥 실물 가치죠. 그러면 우리는 이걸 노동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거예요. 저는 노동이 아니면 갬블링입니다. 둘 중의 하나인 건데 근데 최소한의 가치도 못 만들면 심지어 노동도 못 되는 것이거든요.

GSOK: 가장 건전한 게임 환경이냐라고 얘기했을 때, ‘It takes two’, ‘Among us’ 같은 게임도 있고 ‘리니지w’ 같은 게임도 있고 ‘기적의 검’ 등등 다양한 게임이 시장에 많이 존재해야 건전한 게임 시장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사실 다양한 게임이 많이 있으려면 게임 회사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부분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나라 게임은 부분유료나 확률형 아이템에 너무 의지하고 있다고 비판받고 있는데 앞으로 게임업계에 이런 수익 구조가 어떻게 좀 발전해 나가야 하는지 개선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이경혁 칼럼니스트: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수익 구조상 가장 싸고 가장 수익이 좋은 게 그거니까 다 그쪽으로 가고 있는 거예요. 결국,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은 부분유료 모델이 맞습니다. 확률형 아이템이 맞고요. 이건 부정할 수는 없어요. 근데 결국 만약에 되게 재밌는 거는 이게 한국과 해외가 좀 차이가 있잖아요. 솔직히 말하면 이거는 저도 얼마 전에 또 무슨 콘텐츠 하나 통계 데이터를 보면서 느낀 건데 내수를 벗어나야죠. 한국 게임이 그 수익 구조를 벗어나려면 해법은 결국 내수 시장을 벗어나는 거라고 봅니다.

GSOK: 우리나라 게임은 사행성이 심하다 비즈니스 모델이 다 확률형 아이템이라고 비난을 하시기도 하고, 어떤 분은 정액제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K-game이 가지고 있는 장·단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강혁 칼럼니스트: 장단점 얘기가 참 쉽지 않죠. 저는 한국 게임의 장점이라고 한다면 굉장히 소비자의 지향에 빠르게 적응한다는 것은 굉장히 큰 장점이라고 봅니다. 좋은 문화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큰 강점이거든요. 게임은 서버 중심으로 계속 서비스를 하고, 한국 게임산업이 가지고 있는 되게 큰 강점이라면 저는 그거라고 봐요. 고객 응대는 굉장히 잘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 물론 이 얘기를 하면 게이머들은 굉장히 싫어하죠. 뭔 소리야 내가 얘기해도 별 개선도 안 되는데, 그래도 외국 게임사들에 비해서 굉장히 강점이라고 봐요. 그리고 한국 게이머가 한국 게임산업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해요. 어마어마하죠. 98년 IMF와 스타크래프트 이후 한국 게이머들의 콘텐츠 소모력은 세계 최고거든요. 그러니까 외국 게임사들도 한국이 5천만 밖에 안된지만 한글 패치를 자꾸 붙이려고 하는 이유가 뭐겠어요. 여기가 임베디드 환경인 거예요. 한국에서 게임 콘텐츠를 한번 돌려보면 답이 나옵니다. 그리고 MMORPG 같은 것도 한국에서는 항상 게임 할 게 없다고 하잖아요. 이게 외국에서는 4개월짜리 콘텐츠인데 3일만에 해놓고 할 거 없다, 이런 식인 거죠. 한국 게임산업의 큰 장점은 이런 사람들을 메인 타깃으로 두고 있다는 게 저는 큰 장점이라고 봅니다. 뭘 만들어도 경쟁력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죠. 이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많은 사람이 단점을 이야기하는데 제가 생각하는 가장 큰 단점은 게임은 콘텐츠잖아요. 어쨌든 콘텐츠라는 거는 결국 다른 콘텐츠의 재현이거든요. 소설도 그렇고 미술도 그렇습니다. 인간이 원래 가지고 있는 감정과 사실이 있고, 그것들을 창작자가 받아들여서 해석하고 다시 내뱉는 아웃풋의 결과가 창작물인데, 한국은 이게 너무 약해요. 창작자를 위해서 쌓여야 하는 베이스가 부족합니다.

GSOK: 우리나라 K-game이 앞서 말씀해 주셨던 것처럼 스토리텔링이 부족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경혁 칼럼니스트: 그걸 조금 더 확장해서 저는 세계관, 세계관을 만드는 작업이 너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도, 시장이 학습시킨 결과죠. 세계관, 스토리가 없어도 클릭 잘 되고 영상이 잘 돌아가면 충분히 재미를 만들 수 있죠. 근데 그 재미가 이제 한계효용의 끝에 가고 있는 상황이라면 다른 쪽을 좀 생각해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GSOK: 확률형 아이템과 관련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확률형 아이템 논란을 보면서 첫 번째 확률 공개, 두 번째는 확률 검증, 세 번째는 확률 제한 등의 서로 다른 층위가 있는데, 이를 어떤 이유에선지 모두 하나로 일치시키려는 논의가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가지고 계시는지요?

이경혁 칼럼니스트: 저는 조금 근본적으로 질문하고 싶은 게 “확률을 공개하면 달라질까?” 라는 생각은 있어요. 사람들은 확률형 아이템의 문제를 확률 공개로 자꾸 치환하려고 하는데 공개가 되면 사람들은 정말 다르게 움직일까? 아까 배틀그라운드 얘기했지만 기대 승률이 1%라고 공개된다고 해서 그렇게 바뀌지는 않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래요

그런데 지금 문제는 확률형 아이템이라는 하나의 이슈를 사회가 떠 안 았고, 그 해법으로 확률 공개라는 쪽으로 방향을 가는 게 맞는가에 대한 의구심은 있습니다. 저는 그게 정답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은 있어요. 확률 공개라는 것이 합의된 결론이라고는 하지만, 그 합의가 정상적인 방향인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있고, 그리고 공개를 한다고 해서 그 다음에 검증의 문제가 또 있잖아요. 그렇게 하면 서로 불신만 쌓이는 거예요. 솔직히 말해서, 게임사의 확률이라는 것도 고정값은 아니잖아요. 그리고 앞에 뽑은 거 다 이어서 그 뒤에 경우의 수에 또 연결시켜서 자기가 생각하는 동적인 확률 표준을 만드는 건데 그걸 어떻게 검증합니까? 그래서 저는 다른 방향의 논의가 필요한 것 같아요. 게임사와 이용자의 입장은 다른데 루트 박스 소위 말하는 오프라인에서 럭키 박스라고 판매하는 형태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프라인 럭키 박스에 대해 확률 공개 얘기 안 하잖아요. 포인트는 거기에 있는 거죠. 그러면 어디까지 우리 사회는 오프라인에서 럭키 박스라는 걸 허용했었는지에 대한 감각을 되살려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게임 안에서도 견딜 수 있는 한계 허용 범위가 있다고 봅니다.

그 기준이 좀 주관적이기 한데 저는 가끔 그런 비유를 많이 써요. 원래 도달해야 하는 순간이 있고 게임은 과정의 매체잖아요. 예를 들어 보스를 잡으려면 칼이 하나 필요하고 칼을 사려면 500골드가 필요해 500골드는 사슴 100마리를 사냥하면 획득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과정을 확률 A, B, C 상자 중 하나를 까서 그 중의 하나가 그 검이 나오면 되는 걸로 치환이 됐습니다. 과정이 압축돼서 결과로 치환되는 과정이잖아요.

그러면 저는 법제화 혹은 제도화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콘텐츠의 생명력은 소구력이에요. 사람들이 더 쉽고 간결한 걸 선택을 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이걸 제도적으로 확률을 공개한다고 하면 다시 원래로 돌아갈까요? 그게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확률 공개가 답이 아니라는 겁니다.

시장의 트렌드가 바뀌면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확률형 아이템이 완전히 지배하고 있는 한국 게임 상황이 영원히 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인구통계학적으로 변화가 분명히 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금의 10대 20대가 경제 중심으로 올라가는 30대가 되는 시점에서 소비력이 지금의 50대만큼은 가기 어렵습니다. 그 단계에 올라가면 게임 쪽에서 부분유료 아이템의 소비는 지금보다 떨어질 거로 생각합니다. 이러한 변화가 확률형 아이템 혹은 부분유료 아이템의 소비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거 같습니다. 인구 구성과 시장구성의 변화가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고, 다만 이걸 그냥 내버려 두는 게 아니라 담론의 투쟁들이 필요하죠.

더 재미있는 게임을 하고 싶은 게 핵심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산업은 더 많은 수익을 내고자 하고, 게이머는 더 재미있는 게임을 많이 보고 싶어 하잖아요. 이러한 전제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이야기는 뭔가를 끌어내 줘야 되는 거예요. 그게 단순히 저는 확률 공개를 해서 엎어지지 않는다고 보고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은 심급이 하나 더 있을 겁니다. 그거를 이야기하고 싶은데, 그게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GSOK: 이용자와 게임사가 서로 불신하고 있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데, 이를 타개하는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경혁 칼럼니스트: 저는 없다고 봐요. 게임은 다른 매체랑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는 1만 원을 지불하고 극장에서 2시간 보면 끝입니다. 경계가 정해져 있어요. 그러나 게임은 그게 없습니다. 소설은 소설책을 한 권 사서 읽으면 결말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게임은 A, B를 사야 결말을 볼 수 있는 구조로 구조 자체가 끊임없이 갈등하게 되어 있습니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갈등은 오락실 시절부터 있었습니다. 동전 하나를 넣으면 할 수 있는 플레이는 처음에 간단한 조작 방법을 알려주고 끝판왕이 등장해서 계속해서 동전을 넣어 플레이하게 만들죠. 그리고 동전 하나의 가치는 움직이죠. 게임을 하면 할수록 숙련도가 쌓이고, 고수의 동전 하나는 무한대에 가까운 플레이 시간을 가져가기도 해요. 그러면 그걸 막기 위해 제작자는 난이도를 올리고 못 깨는 지점을 만들어서 업장·제작자·플레이어가 경합을 해오던 관계였어요.

숙련도라는 걸 두고 근본적으로 갈등 없이 판매할 수 없는 방식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래서 없앨 수는 없다, 다만 지지부진한 논쟁에 빠지지 말고 한쪽의 입장에 너무 기울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이야기하면서 조정해 나가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GSOK: 평론가님께서 바라는 혹은 예상하는 게임의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이경혁 칼럼니스트: 인터넷 짤에 희망 편과 절망 편이 있잖아요. 게임의 미래는 이 두 가지가 다 있는 거 같아요. 희망 편이라면 기술이 계속 발전하면서 우리는 실제로 놀라운 것들을 보잖아요. 옛날에는 점 하나 이렇게 뛰어다니던 게임에서 이제는 4K 게임까지 출시되잖아요. 얼마 전 언리얼 테크니컬 데모를 프로젝트로 쏴봤더니 진짜 미쳤더라고요. 여기까지 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슈팅 게임을 하면 트리거의 장력을 총의 종류에 따라 바꿔요. 권총은 슉슉슉 들어가지만, 샷건을 쓴다 그러면 (방아쇠에 장력이)걸립니다. 여러 가지 감각들을 계속 발전시키면서 가상이라고 우리가 불렀던 것들의 정교함을 계속 높일 거예요.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나중에는 진짜 우리가 잘 이야기하지 않은 감각 중 전정기관의 평형감각이라는 게 있잖아요. 여러 가지 감각들을 계속 발전시키면서 기술 결정체가 계속 게임에서 나오는 거죠. 그런 면에서 게임의 미래 희망 편은 인간이 상상하는 모든 것들을 더욱더 구체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매체로서의 가능성은 다른 매체보다 확실히 높다는 거죠.

절망 편은 빠칭코죠. 사실 그 모든 재미를 던져두고 게임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재미가 있잖아요, 아까 이야기했던 축적의 재미, 쌓아가봐 너 어차피 현실에서 얼마 못 쌓았잖아. 여기서 마음껏 쌓을 수 있어, 그리고 신나게 빠칭코를 당기는 겁니다. 빠칭코도 되게 재밌어요. 나름 스토리가 있고요. 빠칭코 안에 에반게리온도 넣고 이렇게 소재만 바꾸는 건데 어떻게 보면 우리가 지금 하는 게임들이 상당수 그래요. 그러니까 똑같은 구조 아까 얘기했지만, 엘프, 골렘, 마법사가 그냥 확률을 굴려서 똑같이 가는데 이게 스킨만 바꾸는 거죠. 이렇게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희망 편과 절망 편이 공존한다고 봐요.

사람들이 게임 이야기를 할 때 놓치는 것 중의 하나이고, 제가 아쉬운 게 게임은 스토리텔링을 엄청나게 넣어서 가는 게임이 있고 그 반대의 게임이 있죠. 모든 것들이 다 가능하죠. 근데 그 중에 무엇만이 진정한 게임이다고 이야기 하는 건 저는 되게 잘못 이야기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리얼 게임즈 책의 저자가 게임 연구자인데 되게 재밌는 질문을 하거든요. 사람들은 맨날 뭐가 나오면 이것은 진정한 게임이 아니다라고 얘기하는데, 그럼 “진정한 게임은 뭘까?”라는 질문을 던지거든요. 저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책이고 질문하고 싶은 거예요.

“진정한 게임이 뭔데”라는 질문에 정답은 없다고 봐요. 진정한 게임에 대한 논쟁은 끊임없이 공회전하는 논의들이 있고 그런 걸 벗어나서 뭐가 됐든 게임이라고 부르고 누군가 그것을 플레이하고 있다면 그 자체로 게임이다, 매체니까 표현 방법은 여러 가지고 다만 특정한 것을 저는 그런 논의는 되게 조심스럽다고 생각하는 게, 예를 들어 그것은 진정한 게임이 아니므로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라는 건 스스로 게임의 한계를 매우 좁게 잡는 겁니다.

내가 즐거운 게임, 좋은 게임들을 많이 하고 싶다는 목표에 얼마나 가까이할 수 있는가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거고, 이런 논의들이 쌓여서 게임의 미래를 만들어 갈 거로 생각합니다.

GSOK: 오늘 긴 시간 동안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이경혁 칼럼니스트: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