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대중문화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는 주로 젊음과 새로움, 기술과 도전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대중문화 트렌드에 ‘과거의 문화코드’가 소환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을 ‘뉴트로(newtro)’라 칭하기도 하는데, 과거의 것을 그대로 소환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문화코드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것이 그 특징이다. 말하자면, ‘복고’는 기성세대에게 자신이 경험한 과거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며 추억을 자극하는 마케팅으로 활용해왔다면, 지금의 대중문화의 인기코드는 과거의 문화를 재해석해 즐기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세대 간 공감대 형성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미디어이며 밀레니얼 세대들의 능동적 미디어 플랫폼 활용이 주를 이룬다는 점이다. 이미 몇 년 전부터 미디어 속 세계를 구현하는데, 과거와 현재를 재해석하는 방식이 적극적으로 활용되어왔다. 2010년대부터 제작된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는 세대가 다른 부모와 자녀가 함께 드라마 속 이야기를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역할을 했다. 과거의 문화를 소재로 선택하는 콘텐츠 제작이 늘어나고, 과거 대중음악을 즐길 수 있는 유튜브채널을 ‘온라인 탑골공원’이라 부르며 즐기고, 할리우드 영화 ‘원더우먼’이 ‘1984’라는 부제를 달고 2020년 개봉한 것 역시 우연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게임분야에서도 나타났는데, 2017년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버전 출시, 콘솔게임 <파이널 판타지 7>의 2020년 리메이크 버전 출시 등이 이에 해당된다. 대중의 욕구에 부응하려는 노력이 게임분야에서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능동적 게임 이용자의 다양한 취향, 콘솔게임, PC게임, 모바일 게임 등 다양한 플랫폼을 넘나들며 게임을 즐기는 이용자들의 성향을 고려한 결과일 것이다. 해외 게임의 경우 3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게임이 적지 않은데, 게임을 통해 세대 간 문화적 차이를 자연스럽게 극복할 수 있는 문화적 기반이 이미 오래전부터 형성되어온 것이다. 특히 일본의 경우, <팩맨>, <슈퍼마리오>, <스트리트파이터>, <드래곤 퀘스트> 등이 이에 해당된다.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발달과 함께 발전해왔던 게임의 역사는 현재의 놀이문화를 형성했던 기반이기도 하다. 이용자들이 게임 속 세계를 경험하고 규칙을 학습하며 단계를 극복하는 ‘게임하기’는 이제 ‘시청하기’로 확장되었다. 문화는 ‘감정의 구조’(Structure of feeling)라는 레이먼드 윌리암스(Raymond Williams)의 말처럼, 지금은 게임을 통해 체험하게 되는 즐거움의 감정이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구현되고 있는 듯하다. 게임 이용자들이 느끼는 감정의 구조가 미디어 콘텐츠로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다양한 콘텐츠로 재현되는 게임

아날로그 시대의 텔레비전은 일종의 아비투스(habitus)라고 했던 원용진(2002)의 설명처럼, 텔레비전은 자신이 속한 사회집단의 성향체계, 사회적 의미 등을 학습하게 한다. 텔레비전은 인간의 구성물이고 이것이 행하는 작업은 인간의 선택과 문화적 결정과 사회적 압력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텔레비전이 갖는 ‘일상성’은 이러한 효과를 드러내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 된다(이종임, 2014). 매일 저녁 거실에 모여 드라마를 보던 시청자들은 이제 스마트폰으로 혹은 노트북으로 넷플릭스와 같은 플랫폼을 통해 내가 원하는 드라마를 광고 없이 ‘정주행’할 수 있는 이용자가 되었지만, 플랫폼을 채우는 콘텐츠로서의 드라마는 여전히 인기를 끄는 장르다.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이 아닌 레거시 미디어로서의 텔레비전 방송에서는 게임을 어떤 방식으로 조명해왔을까? 2022년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e스포츠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후, SBS는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의 시범종목이었던 e스포츠 ‘리그 오브 레전드’를 생방송으로 중계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시안게임의 e스포츠 정식 종목 채택 이후 이뤄진 기능적 선택이었다. 이전의 방송에서는 게임을 뉴스 속 게임산업 성장률을 주목하거나, 늦은 시간 편성된 게임 소개 프로그램 그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동안 놀이문화로서의 게임, 이용자의 게임 이용 취향과 팬덤의 형성, 산업형성의 기반으로서의 이용자에 대한 탐구는 방송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게임 이용자 수의 증가, 다양한 게임문화의 형성은 방송콘텐츠 소재 선택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지난 2018년 tvN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가상현실 게임 속 현실과 실제 현실의 세계를 교차로 보여주며 이야기를 구성한 시도를, 2020년 방송된 KBS 예능 프로그램 <위캔게임>은 축구 스포츠 스타, 예능인 가족들의 e스포츠 입문기를 다뤘다. 게임이 세대 간 소통의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도 하고, 온라인 게임 능력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게임에 대한 색다른 모습을 다루기도 했다.

한국과 달리 일본은 1980년대부터 가정용 비디오게임부터 온라인 게임까지 다양한 게임을 즐겨왔던 대중의 취향을 반영해 드라마, 영화로 구현된 게임 관련 콘텐츠가 적지 않다. 특히 넥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일본 드라마 <파이널 판타지:빛의 아버지 XIV>는 일본 스퀘어에닉스의 온라인게임 ‘파이널판타지XIV’를 소재로 제작된 일본 드라마로, 영화로도 제작될 만큼 인기를 끌었다.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드라마는 2017년 제작된 드라마로, 가족관계를 이어주는 중요한 매개체로서의 게임을 주목한다. 주인공의 어린시절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던 아버지와 성인이 된 후 서먹서먹한 관계가 되지만, 갑자기 직장을 그만둔 아버지를 위로하기 위해 자신이 즐겨하는 게임 <파이널 판타지XIV>를 아버지에게 소개한다는 내용이다. 주인공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아버지와 온라인 게임을 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는 따뜻한 내용을 그리고 있다. 특히, 아버지가 온라인 게임을 배워나가는 과정을 자세하게 단계별로 구현해, 드라마 속 아버지의 게임 입문과정은 게임 초보자를 위한 가이드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게임을 플레이하는 과정과 현실 속 배우 연기가 교차 편집되는 등의 굉장히 디테일한 드라마 구성을 보여준다. 게임 유저 대상 리얼리티 관찰프로그램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의 완성도를 보여준다. 컴퓨터 키보드 조작 방법부터 캐릭터 선택방법, 게임 이용방법을 설명해주기도 하고, 정체를 숨기고 게임 캐릭터로 온라인에서 아버지를 만나, 게임을 할 수 있도록 소개해주는 장면은 파이널 판타지 유저라면 몰입해서 볼 수 있을 만큼 잘 구현했다. 게임 플레이 장면과 교차되는 성장한 아들의 사회생활은 일본 특유의 유머코드가 담겨 어색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공감할 수 있는 점은, 아들을 돌보던 아버지가 이제는 아들의 케어를 받는 대상이 되어 있다는 ‘시간의 흐름’을 주목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시간의 간극은 게임을 통해 채워진다. 그 외에도 아버지의 게임 시간이 길어질수록 거실 TV를 독점하게 되고, 한국 드라마를 봐야 한다며 게임 시간제한을 두려고 하는 어머니의 모습도 드라마의 숨은 재미다. 세대별 미디어 이용의 특징과 새로운 미디어 이용 탐구가 주는 재미를 잘 구현하고 있다.

그 외에 게임 관련 다큐멘터리도 지나칠 수 없다. 2020년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다큐멘터리 <하이 스코어>(High Score)는 게임 개발자, 개발사, 게임 이용자의 증가로 나타난 사회적 현상 등을 다루고 있다. 다양한 게임의 흥망성쇄부터 현재의 온라인 게임까지, 관련 개발사, 개발자, 게임디자이너 등의 경험담과 게임 이용자들의 증가로 인해 나타난 사회문화적 현상, 일본과 미국의 경쟁관계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하이 스코어> 속 1980년대 게임 개발자와 게임 디자이너들이 어디서 게임개발 아이템을 얻었는지, 1980년대 미국의 대중문화 속 게임, 영화를 게임화했던 다양한 시도와 실패, 가정용 비디오게임과 현재의 온라인 게임으로의 변화 등을 6편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물론 6부작으로 가정용 게임기부터 지금의 온라인게임까지 모두 섭력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내용구성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인터넷 글도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 관련 아카이빙 작업으로서의 게임 관련 다큐멘터리 작업은 필요한 작업이다. 디지털 아카이브는 소장품이나 자료 등을 디지털 정보로 바꾸어서 보관하며 자료 간의 관련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데이터베이스의 일종이다. 그러나 정보를 단지 축적하는 것뿐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정보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체계화하여 축적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

3. 나가며

최근 국내외 게임산업의 성장률과 동시에 게임이용자 수도 증가률을 통해 산업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드라마 장르에 게임이 중요한 소재로 등장했다는 점은 게임이 더 ‘대중적’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드라마 <파이널 판타지:빛의 아버지 XIV>처럼, 게임은 경험을 공유하고 추억을 함께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테크놀로지의 발달은 드라마 속 게임의 구현을 더욱 정교하게 재현할 수 있게 만들겠지만, 문제는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왜 게임을 개발하는지, 왜 게임을 즐겨하는지, 게임을 누구와 함께 하는지 등, 일상성을 얼마나 구현하는가도 중요하다. 지금의 추세로 본다면, 온라인게임 속 자신만의 캐릭터를 가진 ‘우리’를 조명하는 드라마 제작은 더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현상의 의미를 기록할 수 있는 게임 관련 아카이브 작업도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일례로 넥슨의 제주컴퓨터박물관도 참고할만하다. 게임이용자라면, 컴퓨터의 발달과 함께 게임과의 관계성, 사회문화적 의미 등을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콘텐츠 속 게임구현은 이제 시작단계다. 모든 것이 구성된 상태에서 결과물이 만들어지는 방송콘텐츠는 게임 플레이 원칙과 게임 이용자 간의 협업이 주는 상호작용성과는 다른 장르적 특징을 갖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OTT플랫폼을 통해 콘텐츠를 소비하고 순위를 확인하며, 감상평을 공유하는 지금의 상황은 ‘느리지만 항상 연결되어 있는’ 이용자들간의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방송콘텐츠가 게임플레이 과정의 역동적과 몰입감을 구현할 수는 없지만, 장르적 구성으로서의 드라마가 주는 감정적 공감과 기록으로서의 다큐멘터리 내용이 갖는 아카이빙 작업은 게임 이용자들에게 또 다른 체험과 탐구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게임의 역사와 종류가 다양한 것처럼, 미디어 콘텐츠로 구현할 수 있는 게임 소재 역시 무궁무진할 것이다. 앞으로 게임이 제공하는 즐거움을 다양한 흥미로운 미디어 콘텐츠에서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참고문헌

강신규(2019). 드라마와 게임 사이, 현실과 게임사이-알함브라 궁전의 추억과 경계의 재구성. 문화과학, 97호, 342-364.

원용진(2002). 대중문화와 여성 해방주의, 원용진·한은경·강준만 (편). 대중매체와 페미니즘, 서울:한나래, 17-67쪽.

이동연 외(2020). 서드라이프-기술혁명시대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커뮤니케이션북스.

이종임(2014). 1970년대 드라마 속 여성의 역할과 젠더 재현 방식에 대한 연구, 언론학보 58(5), 180-205.

한국콘텐츠진흥원(2020). 2020 게임산업백서.

김한준(2021.1.17.). 2020 美 게임시장 이용자 지출 63조…전년대비 27% 증가, ZDNetKorea.

https://zdnet.co.kr/view/?no=20210117114141

송가영(2020.7.27.). 미국 공략 이유있다… 국내 게임사들 진출 박차, 시사위크.

http://www.sisaweek.com/news/articleView.html?idxno=136113

이용익(2021.1.19.). 넷플릭스의 ‘잭팟’ 작년 한국서만 5000억원 벌었다, 매일경제.

https://www.mk.co.kr/news/it/view/2021/01/61261/

조진호(2021.1.20.). 넷플릭스, 전세계 가입자 2억명 돌파·한국 콘텐츠에 7700억 투자, 경향신문.

http://sports.khan.co.kr/entertainment/sk_index.html?art_id=202101201111003&sec_id=540401&pt=nv

www.gameindust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