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COVID-19 그리고 게임

COVID-19는 우리 생활에 많은 불편한 변화를 가지고 왔다. 공공보건과 개인 건강을 위한 사회적 거리 두기는 우리 모두가 반드시 실천해야 하지만 우리는 사람의 온기를 이전처럼 느끼기 어려워진 새로운 삶의 방식에 어렵게 적응하고 있다. 소위 비대면으로 불리는 새로운 트랜드로 인해 사회 전반에 걸쳐 우리가 서로와 상호작용하는 근본적 원칙이 바뀌고 있고 이는 이전과는 다른 시각에서 사회현상을 바라보게 하는 기회이자 기존에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들을 어쩌면 포기해야 할 위기가 되고 있다. 비디오게임에 대한 우리의 생각도 이번 기회에 변화를 겪게 될 것이 당연하다.

필자는 꽤 오랜 시간 다양한 종류의 게임을 해왔다. PC게임, 콘솔 게임, 모바일 게임을 하면서 많은 밤을 새웠던 기억이 있다. 게임 할 시간에 다른 일을 했으면 인생이 바뀌지 않았겠냐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지만 나에게 게임은 즐거움이고 도전이고 현실에서는 할 수 없는 특이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최고의 놀잇거리였다. 새로운 게임을 시작하는 설렘을 즐겼고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 엔딩크레딧을 볼 때의 뿌듯함도 많이 느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에게 게임을 일찍부터 알려주고 같이 플레이하곤 했다. 강산이 몇 번 바뀔 세월 동안 게임을 손에서 놓지 않은 덕분에 아이들에게 공들여 만든 좋은 게임을 추천할 수 있을 정도의 눈을 가지게 된 것과 게임 상황에서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을 때 해결할 수 있는 노하우를 한두 개쯤을 알고 있게 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다소의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COVID-19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한창인 이때 나는 게임을 통해 나의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회복되는 경험을 하고 있다.

2. 게임에 대한 불편했던 대화(불편한 소통)

사실 게임은 이미 우리 일상의 일부가 된 지` 꽤 오래 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상황이 허락한다면 모바일 게임을 하기보다는 책을 읽은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만 너무나 많은사람들이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다소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게임 관련해서 부정적인 뉴스를 접할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다. 내 아이가 잠을 자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이불을 뒤집어쓰고 몰래 게임을 하고 있는 모습을 봤을 때 화가 치밀어 올라 어찌할 바를 몰라 힘들어했던 때도 있다. 와이파이 기능도 없는 모양만 스마트폰인 전화기를 구매하기 위해 멀리 있는 매장을 찾기도 했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게임을 우리 아이들은 왜 이렇게 집착의 대상으로만 생각할까, 어떻게 하면 게임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우리 집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기도 했다.

COVID-19로 많은사람들의 생활에 변화가 생기면서 우리 아이들도 생활에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게임은 단연 최고의 골칫거리가 되어버렸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비대면으로 수업을 하고 학원을 가지 못하게 되고 친구들과도 놀 수 없게 되자 아이들은 대부분 시간을 게임을 하면서 보내게 되었다. 어른도 이렇게 답답한데 아이들은 얼마나 힘이 들까? 게임이라도 마음껏 하게 해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게임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아내를 설득했다. 게임을 하는 시간이 늘어나면 학업, 교우 관계, 생활 전반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상황을 이해하는 방식도 다양하겠지만 팬데믹 사태 하의 게임에 대해서는 유독 체념이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나의 주변에는 이미 게임에 대해서 포기 또는 체념을 통해 상황을 받아들인 부모들이 많다. 즉, COVID-19사태 이전에도 게임은 부모들에게 버거운 상대였던 것이다. 유독 필자만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면 아마 거짓말이거나 위선일 것이다. 한때는 아이들에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너무 많이 하지는 마라”, “잠은 자면서 해라” 정도였던 것 같다. 아이들에게 게임에 관해 이야기를 해주면 자기들에게 유리한 점만 기억하고 경계하거나 관리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는 아예 기억하지도 않으려는 아이들을 볼 때 아내에게 미안하고 내가 그렇게 좋아하고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게임 앞에서 이렇게 무기력할 수가 있을까 하고 자괴감이 들었던 적도 있다.

3. 게임 경험의 공유에서 가족 간 소통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가 오르락내리락하는 와중에 아이들은 많은 시간을 게임을 하면서 보냈고 심기가 불편한 아내의 눈치를 보면서 귀가 후 나는 결코 편하지 않은 시간을 보내왔다. 그러던 차에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아빠, 길드보상 좀 받아줘” 어느 직장에서 돌아온 나에게 딸아이가 한 말이다. ‘무슨 길드보상? 내가 딸아이와 같은 게임 길드에 있었던가?’ 순간 딸아이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딸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 아빠가 다운 받아 준 게임 있지? 내가 길드를 만들었거든? 길드원이 나랑 내 친구 두 명밖에 없어서 말이야. 아빠도 길드에 가입하고 길드 랭크업하게 보상 좀 받아주라.” ‘아, 우리 딸아이가 나한테 게임에 관해서 이야기하는구나!’ 어찌나 고맙던지. 그 이후 나는 하지 않고 있던 그 게임을 다시 다운받고 예전의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아빠, 진짜 잘한다! 나는 이 스테이지에서 자꾸 죽어” “그래? 거기서는 말이야….” 딸아이와 이렇다 할 대화의 공감대가 없었던 나로서는 참 소중한 시작이 아닐 수 없었다. 그 후 딸아이와 나는 내가 퇴근하면 길드보상을 받았는지, 게임을 어디까지 진행했는지, 어떤 캐릭터를 키우고 있는지에 대해 거의 매일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가족과 함께 플레이하는 이벤트에서는 딸아이와 나란히 앉아 게임을 하면서 서로를 칭찬하고 격려하면서 최고 기록 달성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이제는 딸아이가 수십 년 게임을 한 나를 능가하는 ‘고인 물’이 되었다. 지금은 게임 이외의 자기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어 게임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반대하는 아내도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보고 신기해하면서 게임에 대한 불편한 심기가 많이 누그러진 것 같다.

게임을 같이 하면서 딸과 친해진 나는 아들과도 게임을 통해 가까워질 방법을 찾기로 했다. 중학생인 아들은 이미 오랫동안 다양한 게임을 너무 많이 해서 아내의 걱정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팬데믹 이전에도 아내와 나는 어떻게 하면 아들은 게임을 덜 하게 할까에 대해 심각한 대화를 많이 했었다. 문제는 아들은 이미 게임에 대해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고 누적플레이 시간도 길어 적어도 게임에 대해 이야기하면 말이 너무 잘 통한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게임 말고 아이들 공부와 생활에 도움 되는 이야기를 하라는데 그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그래서 딸아이와의 경험을 살려 같이 할 수 있는 게임을 찾아봤는데 아들은 배틀로얄 방식의 슈팅 게임을 콘솔에서 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슈팅 게임만 하면 심한 멀미를 하기 때문에 아들의 취향을 알고도 쉽게 같이 해보자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같이 할 수 있는 게임이 뭐가 있을까 고민 끝에 대전게임이 괜찮겠다고 생각하고 내가 아주 오래 플레이해왔던 대전게임을 사서 아들에게 새로운 게임의 세계를 알려주었다. 아들은 이미 게임에서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터라 나는 사정 안 봐주고 솜씨를 발휘했고 아들은 아버지의 수십 년 내공 앞에서 몇 달을 무력하게 보내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내가 퇴근하면 거의 매일 “아빠 한 판 하자”고 하면서 지루한 수행을 계속했다. 같이 게임을 하면서 집에서 뭘 하면서 보내는지, 공부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엄마와 동생은 뭘 하고 지내는지 등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게임이 아니어도 이야기할 주제가 꽤 다양해졌고 공부하다가 막히는 부분을 가지고 와서 질문도 하게 되었다. 이렇게 몇 달을 보내면서 언제부터인가 아들이 나를 이기는 때가 더 많아졌고 지금은 내가 어떤 꼼수를 써도 이길 수 없는 고수가 되었다.

COVID-19으로 우리는 생활의 상당 부분에 원하지 않는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게임을 더 많이 오래 할 수 있게 된 아이들과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PC방보다 차라리 집에서 게임을 하라고 PC를 사주는 부모들 사이의 긴장감이 쉽게 누그러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이들과 게임을 같이 하면서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서로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도 충분히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길드의 랭크를 올리기 위해 나에게 말을 건 딸아이와 승부욕을 자극해서 몇 달을 나에게 지면서도 끝까지 기술을 연마한 아들을 나에게 이어준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게임이었다. 친해지려면 경험을 공유하는 게 좋다는 어쩌면 당연한 사실에서 유례없는 팬데믹 상황에서 나는 아이들과 가까워질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게 된 점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가족과 함께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이 많아져서 게임을 통해 대화와 이해의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나는 이제 게임을 하지 않는 우리 가족의 마지막 멤버인 아내와 같이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을 찾아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