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문화예술의 범위에 ‘게임’을 추가하는 「문화예술진흥법」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로인해 「문화예술진흥법」이 제정된지 50년만에 대한민국의 공식적인 법률로 게임이 문화예술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그동안 대한민국에서 게임은 제대로 된 여가 문화로 인정받지 못하고 학생들의 학업을 방해하는 요소이거나 더욱 심하게는 중독까지 일으키는 물질로 취급받아왔다. 이와 같은 부정적 인식의 지속으로 게임은 산업적 고부가가치에도 불구하고 강제적 게임 셧다운제, 온라인게임 결제 한도 등 여러 규제 정책들의 대상이 되었다.

이번 글에서는 이처럼 부정적 인식의 대상이었던 게임이 어떻게 대한민국 법률상 문화예술의 범주로 포함될 수 있었는지, 이런 결과가 나오기까지 어떤 변화들이 있었는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정말 게임을 예술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 들여다 보고자 한다.

1. 「문화예술진흥법」통과 배경

문화예술의 범주에 게임을 포함시키려는 최초의 시도는 약 10년전인 제19대 국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2014년 7월 16일, 김광진 의원이 처음으로 문화예술 범주에 게임을 포함시키는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당시에는 소관 상임위에 계류된 채 법안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조차 진행되지 못하고 임기만료로 폐기되었다.

이후 제20대 국회에서 동일한 내용의 개정안을 김병관 의원이 2017년 1월 24일에 발의했다. 당시에는 법안에 대한 논의가 한 차례 진행되었으나 정부와 일부 의원들의 우려의 목소리로 동 법안 역시 본회의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당시 정부에서는 “게임을 문화예술의 범위에 포함시키는 것에 무리가 있다.”며 “게임산업법상 게임물의 정의1)를 고려할 때, 게임을 문화예술의 범주에 넣으면 문화산업과 예술을 혼동시키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고 말했다.

당시 법안을 논의한 의원들 사이에서는 게임산업이 문화콘텐츠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역할, 게임산업의 위상 등을 고려해 문화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의견도 많았으나 게임산업을 문화예술의 범위로 포함시키면 기존 문화예술 종사자들 지원이 감소하는 등의 현실적인 우려를 표명한 의견도 나왔다.

이후 제21대 국회 들어 필자가 다시금 동일한 내용의 개정안2)을 2020년 11월 4일에 대표 발의했다.

2022년에 다시 소관 상임위 법안 소위에서 다뤄진 동 법은 그러나 3년 전과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로 진행됐다.

「문화예술진흥법」이 제정된 이후, ‘문화예술’의 범주에 계속해서 새로운 장르를 추가하는 방향으로 개정이 진행된 만큼 ‘문화예술’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 규정 신설이 필요하다는데 정부와 위원들의 의견이 모였다. 여기에 더해 각 장르를 추가하는 방향으로 발의된 개정안들의 취지를 고려하여 추가적으로 장르도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결론이 난 것이다3). 사실상 게임을 문화예술로 포함시킬 수 있느냐의 문제는 이미 이견이 없을 정도로 당연시된 분위기였다. 

1972년「문화예술진흥법」이 제정될 당시만 해도 ‘문화예술’의 범주에 포함된 것은 문학, 미술, 음악, 연예, 출판 5개 분야에 불과했다. 이후 50여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무용, 연극, 영화, 응용미술, 국악, 사진, 건축, 어문, 만화까지 범주가 넓어졌고, 지난해 개정안 통과로 인해 게임, 애니메이션, 뮤지컬까지 문화예술에 포함된 것이다.


불과 3년 만에 정부와 위원들의 인식이 변화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게임에 대한 사회적 여론 변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2.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

2011년 2월 한 방송사 저녁 뉴스에서 ‘잔인한 게임 난폭해진 아이들.. “실제 폭력 부른다”’는 제목의 보도가 방영됐다. 기자는 게임 사용자들의 폭력성을 알아보기 위해 PC방의 전원을 순간적으로 내려버렸고, 전원이 내려가자 게임을 하던 사용자들이 거칠게 욕설을 내뱉는 장면을 내보내며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곳곳에서 욕설과 함께 격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폭력 게임의 주인공처럼 난폭하게 변해버렸다’라고 전했다. 뒤이어 한 심리학 전문가가 ‘자신을 방해하는 방해물이 나타난다던지 이런 경우에는 과다한 공격이 일어나면서 그 충동을억제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라고 말한 인터뷰를 덧붙임으로써 게임이 폭력을 유발하는 물질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위 뉴스는 당시에도 과도한 실험 설정으로 오히려 비판의 대상이 되었지만, 당시 게임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여겨진다.

당시 게임은 청소년의 학업을 방해하는 대상으로만 여겨지며 게임을 하는 것 자체가 여가 문화를 즐기는 행위보다는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행위처럼 매도되곤 했다.

이런 부정적 인식은 결국 국회의 입법으로까지 이어졌다. 이전에도 ‘셧다운제(밤 12시부터 오전 6시까지 만 16세 미만 청소년의 PC게임 접속을 물리적으로 차단하는 제도)’를 내용으로 하는 법률이 발의되긴 했었지만, 결국 2011년 해당 내용이 국회 본회의까지 통과하면서 PC 온라인게임을 대상으로 셧다운제 규제가 시작됐다. 게임산업 진흥을 위해 제정된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상에 게임 ‘중독’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도 2011년이다4).

심지어 제19대 국회에서는 인터넷 게임을 중독물질로 취급하는가 하면, 인터넷 게임 중독 치료를 목적으로 게임사에게 부담금을 부담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들이 발의되기도 했다. 이처럼 게임을 중독을 유발하는 물질로 바라보는 시각은 국내외적으로 계속되어 2019년에는 세계보건기구(WTO)에서 게임중독을 질병코드에 포함시키는 결정까지 내려진다.

위와 같이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계속됨에도 불구하고 게임은 다양한 디바이스 및 플랫폼의 발전에 따라 형태와 장르가 더욱 다양화되었으며, 이에 따라 더욱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손쉽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한국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2023)의 게임이용현황 발표자료에 따르면 만 10~65세 일반인 6천명을 대상으로 게임 이용 여부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약 74%가 게임을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연령병 이용률을 보면, 10대에서 40대까지 80% 이상의 사람들이 게임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남녀 모두에게서 나타난 현상이다

게임 사용자가 많아지는 만큼 게임산업의 성장세도 지속되고 있다. 2021년 게임산업 총매출액은 20조 9,913억 원으로 2020년 대비 약 11.2% 성장했다.5) 게임시장의 성장은 대한민국만의 특징이 아니다. 2021년 전 세계 게임시장 규모는 2,197억 5,8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8.7% 성장을 기록했다.6)

이러한 수치들은 게임이 이미 보편화된 대중적 취미로 자리매김했을 보여준다. 이런 흐름 속에서 자연스레 게임이 쓸모없는 취미라거나 중독물질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조금씩 개선되기에 이른다. 여론의 변화는 제도의 변화로 이어진다. 대표적인 게임 규제인 ‘셧다운제’는 도입된 지 10년 만인 2021년에 폐지되었다.


필자는 이러한 변화들이 결국 대한민국 법률상 게임을 문화예술로 만든 힘이라고 생각한다.

3. 게임을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제 본 글의 주제로 다시금 돌아갈 차례이다. 그래서 정말 게임이 예술인가? 게임에 대한 추억이 과거 테트리스 게임이나 갤러그와 같은 정도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라면 ‘게임은 예술이다!’라는 주장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출시되는 다양한 게임들을 접해본 사람들이라면 이 명제에 상당 부분 동조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통과된 「문화예술진흥법」에서 신설된 문화예술의 정의 규정을 다시금 들여다보자.

‘문화예술이란 지적, 정신적, 심미적 감상과 의미의 소통을 목적으로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 또는 타인의 인상(印象), 견문, 경험 등을 바탕으로 수행한 창의적 표현활동과 그 결과물을 말한다.’

최근 게임을 보면 화려한 그래픽과 다양한 서사, 몰입을 돕는 여러 창의적인 장치들을 바탕으로 게임 이용자들에게 여러 감상을 일으키고 있다. 하나의 게임을 결말까지 하고 난 후 드라마나 영화를 본 것처럼 진한 여운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고, 게임을 하면서 게임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져 다양한 상상력을 펼치는 사용자들도 있다. 지금의 게임은 법률적 정의에 비추어 봐도 문화예술로 인정받기에 손색이 없다.

특히 필자가 해당 법안을 발의하게 된 배경은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게임이 문화예술이라는 생각에 나름의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의 게임이 완성되기 위해 영상, 미술, 음악, 서사 등 다양한 문화예술 장르가 융합된다. 게임을 이루는 요소들이 모두 문화예술로 인정받고 있는 상황에서 문화예술의 종합체라 할 수 있는 게임이 문화예술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게임 자체로도 문화예술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지만 다른 문화예술과의 조화는 그 자체로서 새로운 문화예술이 된다. 그런 측면에서 필자는 작년 12월 국회에서 게임에 사용된 OST를 오케스트라로 연주하는 음악회를 개최했다.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선율 뒤로 다양한 게임 영상들이 배경처럼 지나갈 때 색다른 감동이 우러나왔다. 넥슨에서는 올해 초까지 예술의 전당에서 넥슨 게임 아트 전시회를 진행했다. 전시장 입구에 「문화예술진흥법」개정안의 내용이 나와 있는걸 보고 보람됨을 느꼈다. 앞으로도 이런 다양한 시도가 더욱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4. 문화예술로서 게임의 과제

게임은 이제 대한민국의 법률로 문화예술의 지위를 인정받았지만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게임산업 종사자들 중 어디까지 예술가의 지위를 부여할 수 있는지, 그에 따른 지원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현실적인 문제들이 남아 있다.

또한,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국내 게임중독 질병코드 도입 문제도 동법 개정안 통과를 바탕으로 슬기롭게 해결해야 할 것이다.

특히 아직 게임이 문화예술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가장 중요한 과제가 남아 있다. 당장 법안이 통과되었을 때, 게임 이용자들 사이에서 환영의 목소리가 많았지만 국내 게임사들을 향한 부정적 시선으로 인해 국내 게임을 예술로 인정할 수 있겠냐는 부정적 여론도 있었다. 게임이 법적 지위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 차원에서까지 문화예술로 인정받으려면 국내 게임사들이 스스로 출시하는 게임과 다양한 행보를 통해 문화예술임을 증명하는 활동을 이어나가야 할 것이다.